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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학생을 처음만난 건 지금으로부터 6년전(그 아이가 중학교 2학년일 때다).

수업시간에 몹시도 떠드는 아이였다. 어찌나 정신없이 앞·뒤·옆의 아이와 수선스레 이야기를 나누는지 수업 진행이 어려울 지경이었다.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이미 인수라는 그 아이는 선생님들 모두 두손두발 다 들게 만든 아이였다. 그도 그럴 것이 1학년 입학 후 초창기부터 주먹다짐으로 싸우기, 야한 낙서하기 등 선생님들이 감당하기에 버거운 행동들을 지속적으로 해 소문이 자자했던 것이다. 그 해에 학교를 옮겨 간 첫해여서 그 아이의 악명을 몰랐던 나는 첫 수업부터 매우 당황했다.

일단 수업이 지속되기 힘들다고 판단한 나는 아주 큰 목소리로 (연극을 했기 때문에 발성하나는 자신 있다) "그대로 멈춰라!" (노래로 음을 타며) 하며 모두에게 ‘얼음’이 되기를 요구했다. 그리고 약속을 하자고 제안했다. 내용은 말을 하고 싶은 사람은 우선 손을 들고 신청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인수를 쳐다보며 꼭 그리해야한다고 당부했다. 단, 손을 들면 무조건 허락해주겠다고 했다.

조건에 흥미를 느낀 인수는 시도 때도 없이 손을 들고 별의별 질문을 다 했다. 약속대로 무조건 발언기회를 주었고 어떤 질문이든 재미있게 대답해줬다. 내(나는 세계사 과목을 맡고있다) 방법은 통했다.

모든 질문을 세계사 학습내용으로 회귀시키고 웃게 만들어줬다. 약간은 억지스럽기도 했으나 세계사 시간의 이점을 활용해서 남자애들이 좋아하는 영웅 및 신화이야기로 쏙 빨려들게 하면서 그 녀석을 우쭐하게도 해주었다.
우리는 친해졌다. 완전 낚았다고나 할까? 때로는 친절한 유치원 선생님 모드로 연필도 깎아주었다. 이상하게도 인수는 아이들이 흔히 쓰는 샤프펜슬을 안 쓰고 꼭 연필을 깎아 쓰곤 했다. 책상에 엄청 진하게 낙서도 하였는데 그림을 제법 잘 그렸다. 그 역시 칭찬의 소재가 되었다. 낙서를 지우라고 하기 전에 먼저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리고 나서 내가 사진으로 보관하고 있으니 지우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공공의 물건이므로...

어쨌든 연필을 고집하는 이유는 처음엔 그냥 샤프를 살 돈이 없어서였고 나중엔 연필이 좋아서라고 했다. 하지만 잘 깎지 못하기 때문에 늘 뭉툭한 연필심이라 글씨가 공책의 줄을 넘어서기 일쑤였다. 그러나 연필로 쓴 필체는 아주 좋았던 기억이 난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복도에서 엄청난 고함소리와 육탄전 소리가 들려왔다. 나가보니 옆반 선생님과 인수가 실랑이를 벌이며 내는 소리였다. 인수는 당시 우리 옆 반 학생이었고 유난히 예민했던 인수의 담임선생님은 그 녀석의 돌발행동에 늘 애를 먹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 그날 학급자치시간에 싸움이 일어난 것이다.

내가 달려 나가니 인수네 담임선생님은 뛰쳐나가려는 인수의 팔을 잡고 막아서다가 결국 뿌리치고 밀치는 소동까지 이른 것이다. 그 선생님은 나를 보더니 "선생님 얘 좀 잡아주세요!"하며 구원을 요청했다. 그 ‘잡아주세요!’라는 말에 순간 당황했지만 나는 일단 인수를 부둥켜안았다. 인수는 울고 있었다. 그 눈물을 보니 갑자기 목이 메어왔다. 대뜸 "인수야, 누가 그랬어? 누구야? 쌤이 혼내줄께!" 하며 역성을 들었다. ‘무조건 한편’이 필요했던 인수는 꺼이꺼이 울었다.

인수는 그날 있었던 억울한 상황을 울먹이며 말하더니 조금씩 화가 앉는 것 같았다. 교실로 다시 데려다 주었다. 내용은 아침에 덩치 큰 그 반 OO가 먼저 놀려댔단다. 인수가 엄마 없이 아빠랑 둘이 사는 처지라는 것을 비웃는 내용으로. 덩치를 믿고 인수의 마음 상하게 한 00이에게 인수는 주먹을 불끈 쥐고 거칠게 욕을 했고 담임선생님은 목소리가 더 큰 인수에게 일단 주의를 주셨던 것이다. 인수는 어린 마음에 억울함이 북받쳐 올랐고 맨날 나만 갖고 그래? 하며 뛰쳐나가려 했던 것.

상황이 어찌되었던 학교에서 뛰쳐나가게 둘 수는 없었기에 무조건 붙들고자 한 것이었으나 지금 생각해보니 인수역시 누군가 잡아준 것이 무척 고마웠던 것 같다. 이후 인수는 내 앞에서 매우 순한 아이가 되었다. 마주치면 웃고 농담도 건네고 자기편이라고 생각해주는 것 같았다.

이듬해 인수는 운명처럼 우리 반이 되었다. 이건 완전 신의 섭리다. 뽑기로 고른 학생 명단 속에 인수의 이름을 발견하고 내게 준 사명이라는 생각을 했다. 신앙생활을 독실하게 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그 상황은 그렇게 밖에 해석이 안 되었다.

그 아이는 엄마가 없었다. 아빠는 매우 엄격해서 늘 상 집안 청소가 잘 되어있지 않으면 매를 들었다고 한다. 때로는 아주 심하게 맞아서 멍이 든 채로 학교에 오곤 했다. 나는 인수의 상황을 생각하면 늘 목이 메곤 했으나 그 앞에서는 표현할 수도 없었다. 어린 마음에 자존심이라도 상할지 몰라서.

인수는 게임광이었다. 컴퓨터를 아주 잘했다. 중3 담임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등학교 진학에 앞서 진로교육을 하는 것이다. 인수의 진로선택을 위해 어떤 도움이 필요할지 고심하다가 인근 컴퓨터 학원에 전화를 했다. 학급에 매우 어려운 학생이 있는데 컴퓨터 재능이 있으니 무료로 수강할 수 있게 해주시면 안 되느냐고... 그 원장님은 내가 담임을 맡았던 졸업생의 어머니였다.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정말 고마웠다. 인수를 위해 학원 수강의 기회를 마련해주신 00컴퓨터 학원에 아직도 인사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말 감사드린다.

인수는 시험 때만 되면 교실에서 구토를 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시험시간이 끝나면 교무실로 달려와 그 사실을 내게 알렸다. 토사물을 치우는 일은 선생님이 해줄 일이었다. 역한 냄새와 함께 인수의 책상 위가 더럽혀져 있었다. 군말 않고 오물을 치워주었다.

처음엔 인수가 걱정되었다. 다음엔 친구들이 놀릴까봐 걱정도 되었다. 이런 저런 걱정... 먼저 인수의 등을 토닥이며 더 아픈 데가 없는지 물었다. 아이들은 그런 내 모습에 무언의 동조를 했다. 누구도 이후 인수의 구토에 대해 지저분 하다거나하는 뒷말을 하지 않았다. 아픈 아이에게 마음써주는 것이 옳다는 당연함에 동조했다. 시험 때마다 구토를 했던 인수는 아마도 시험을 잘보고 싶은 마음에 매우 긴장했었던 것 같다.

중2 때 까지 개념 없이 성적에 신경을 안 썼으나 중3이 되니 진학을 위해 내신을 잘 챙기려는 기특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려니.

학년말 학급 앨범을 만드는데 인수의 컴퓨터 실력이 발휘되었다. 전자 앨범을 만드는 것이라 컴퓨터 프로그램을 잘 다루는 인수는 우리 반 보배였다. 다른 반에서 부러워할 정도였다. 멋진 학급앨범 CD를 하나씩 손에 든 아이들은 인수에게 선망의 눈빛으로 인사했다.

인수는 OO공고의 컴퓨터과에 진학했다. 특성화고등학교를 희망했으나 3학년 성적은 우수한데, 1학년 때 무단 결석의 흠 때문인지 갈 수가 없었다. 다음해 5월. 스승의 날이라고 나를 찾아왔다. 주머니에서 종이를 한 장 꺼내 보여주었다. 성적표였다. 전 교과 1등. 눈물이 핑 돌았다. 감격스러웠다. 얼마나 기뻤는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하늘을 날을 것 같다.

선물로 내가 쓴 책을 한권 주었다. "언제 책 까지 다 쓰셨어요?" 감탄하는 인수의 말. 그냥 웃었다. 더는 말이 필요 없었다. 밥이라도 같이 먹었어야하는데 방과 후 수업이 있어서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아직도 마음에 걸린다. 나는 졸업한 제자들에게 아주 훗날까지 기억나면 찾아오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잘 살라고 한다. 그해에 내가 맡은 학생들이 제일 소중하므로 졸업생 A/S까지는 기대하지 말라고 우스갯소리도 한다.

사실이 그렇다. 졸업생까지 만나줄 시간이 없을 정도로 학교일은 바쁘다. 해마다 새롭게 만난 담임반 아이들 하나하나와 교감하는 것에 몰두하고 싶다. 인수는 대학에 합격해서 찾아왔다. 수시로 유명한 OO공대에 합격했노라 하며 매우 자랑스런 얼굴로. 얼마나 멋지게 자랐는지 아직도 그 장면을 생각하면 벅차오르는 뿌듯함을 가눌 길이 없다.

이런 보람은 교사만이 안다.

그 순간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보람. 성장한 제자들이 세상에 어엿하게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을 보는 보람을 어떤 무엇으로 비할 수 있을까? 그 기쁨은 행복 그 자체다. 그래서 말인데 청년들의 실업문제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젊은이들이 소위 ‘알바’를 하면서 겨우겨우 학비를 마련하면서도 졸업 후 안정된 취업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내 제자들의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현재와 미래 모두 너희가 주인공이다. 자존감을 잃지 말고 자신 있게 걸어가라’고 당당하게 가르치고 싶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주어진 환경 때문에 위축되고 있는 그 아이들은 수많은 인수들이다. 복도에서 울고 있는 인수. 무언가 어떻게든 해주고 싶다. 누가 그랬어? 쌤이 혼내줄게.

어린 인수는 참으로 멋진 청년으로 자랐다. 세상에 자랑하고 싶다.

그런데 이런 상상은 정말 하고 싶지 않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대학시절을 알바로 이어가며 겨우 졸업은 했다하자. 그런데 그 후에 취업이 안 되어 고시원에서 살면서 근근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알바를 하고 있다면? 직장은 제 2의 가정이라고 하는데, 태생부터 어려웠던 그 아이가 제 2의 가정도 찾지 못한 채로 슬퍼하고 있다면...그런 삶을 사는 청년 인수를 상상하고 싶지 않다. 찢어질 듯 아프다. 복도에서 부둥켜 안아주던 마음처럼. 제자의 슬픔은 내게 공명이 되어 온다.

무언가 어떻게든 해주고 싶다.

누가 그랬어? 쌤이 혼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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