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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news 조회 10 2017.08.06 19:11

 

 

 

 

 

 

 

 

 

그리스도께서 이 교회에 대해 책망하시는 부분은 "첫 사랑을 저버린 것"이다. 이 교회의 성격은 이 교회의 이름에서

알 수 있는데, 에베소는 "가게 하다(let go", "느슨해지다(to lex)"라는 뜻이다. 실족하는 교회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또 내가 아는 것은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들이 너희 가운데로 들어와서 양떼를 아끼지 아니할 것이며 또한

너희 가운데서도 사람들이 일어나서 왜곡된 것을 말하여 제자들을 끌어내어 자기들을 좇게 할 것이라.](행20:29,30)

 

이 경고의 의미는 6절에서 다시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네게 이것이 있으니, 즉 네가 니콜라파의 행위를 미워하는 것이라. 나 역시 그것을 미워하노라."

여기서 바울이 말한 "이리들"이란 "니콜라파"를 말한다. 그들은 분파가 아니라, "제사장 직분"을 정착시키려는 교회

안의 한 무리들이다. 아마도 구약의 레위지파와 유사한 제사장 직분을 따르는 교회를 이루려고 시도하였을 것이다.

 

"니콜라파"란 그 단어가 의미하는대로 "지배한다"라는 "니코(Niko)"와 "평민" 혹은 "평신도"라는 "라오스(Laos)"로 

이루어진 단어의 의미에서 알 수 있다. 이 목적은 "성직자 제도"를 정착시키려는 것이다. 

그들을 평신도 위에 놓는데, 이것은 신약의 계획과는 전혀 관계 없는 것이다.

그들을 목자들(Pastors)이라고 부르지 않고, 성직자들(clergy-Rev), 대주교(Archbishops), 추기경(Cardinals) 이라

고 부른다.

 

이것은 우리는 "사도직 계승"의 교리의 기원을 알게 되며, 평신도로부터 성직자를 분리시키는 것이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미워하신다. 

에베소 교회는 속지 않았으며, 그들이 거짓말쟁이이며, 거짓 사도라는 것을 찾아내었다. 

에베소 교회의 특징은 교회사 A.D 70년에서 A.D 140년이에 있었던 초대교회의 일반적인 특징을 잘 담고 있다.  

 

 

 

 

"에베소 교회"기간에서 주님께서는 책망하신 것은 "첫 사랑"을 저버린 것이었으며, 이것이 그분을 돌아서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머나의 어원은 "쓴맛"이며, "몰약"을 의미한며, 이 약은 죽음과 관계 되어있다. 이것으로 우리는 교회 성도들

에게 닥칠 박해와 죽음을 예언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았던 점이 고난을 겪도록 만들었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until death)가 아니라 죽기까지(unto death) 신실하였다."

그들은 자연적으로 죽을 때까지가 아니라 박해의 가중함으로 죽음의 고통이 필요했을 때 기꺼이 순교자들의 대열

에 참여했던 것이다. 그들은 "생명의 면류관"을 상으로 받을 것이다. 이것이 순교자의 면류관이다.

 

그들은 그들 박해의 주동자가 마귀이며, "10일"동안 고난이 지속된다는 점을 알았다. 

10일은 의심할 여지 없이 로마제국 통치 기간인 네로A.D 64년에서 시작하여 이오클레디안 A.D 310년 까지 진행

된 "10번의 큰 박해"을 예언한 설명일 것이다. 

교회사에서 일곱번의 "큰 박해"가 이 "머나 기간" 중에 일어났다. 혹 아마도 가장 극악하게 박해했던 도미티안

통치시대 마지막 10년을 의미할 것이다. 이 기간은 A.D 170년에서 A.D. 312까지이다.  

 

 

 

 

버가모 교회의 메세지에서 "사탄의 회당"이 언급되고 있다. 

칼데아의 대제사장이며 왕이었던 아탈루스 3세는 페르시아를 정복하기 전에 퍼가모로 가서 거기에 정착했다. 

따라서 사탄은 그의 수도를 바빌론에서 로 옳겼다. 

처음으로 그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을 박해했는데, 안티파스도 그 순교자들 중에 한명이었다.

 

하지만 그는 곧 전술을 바꾸어 교회를 높이기 시작했으며 세상 사람들을 교회로 이끌기 위한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콘스탄틴은 의도는 종교적이기 보다는 정치적이었다. 

그는 한 성으로써 통치하기 위해 그리스도인들과 이교도를 융합시키를 원했으며, 그의 의도대로 그의 제국은 융합

되었다. 이 연합의 결과 두가지 거짓되고 잔악한 교리가 교회 안으로 들어왔다.

 

 

첫 번째는 "발라암의 교리"이며 두 번째는 "니콜라파의 교리"이다. 

이 두 번째 것은 이미 에베소 교회의 세지에서 살펴보았다. 

그리고 A.D 325년에 니케아에서 열렸던 첫번째 가장 큰 교회 회의(공회)는 교회 안에 이러한 교리가 확고히 되는

발판이 되었다.

 

*이 회의는 약 1500명의 종교지도자들이 참석했다. 

여기에서 주된 의결과제는 성직자 계급이 평신도를 지배하며, 정치적 통합과 종교체제를 이루는 교리를 정립하는

것이었다. 결국 여기에서 이들은 "니콜라파의 교리"를 교회의 정통교리로 확고하게 정착시켜 버렸다.

 

"발람의 교리"는 민수기 22장 25장에서 발람의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이스라엘 자녀들이 나안으로 가던 길에 있던 모압 땅에 이르렀다. 

모압의 왕이었던 발락은 프올의 아들 발라암을 불러서 그들을 저주하게 했다. 

발라암은 유프라테 강의 프돌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주님은 발라암에게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는 발락에게 "바알 프올"의 음탕한 제사에 그들을 초청하도록 제안했으며, 이로써 이스라엘을 주님께서 분노하실

올무에 빠뜨렸다. 그분 스스로 이들을 멸망시키도록 하는 것이다. 

발락은 그대로 하였으며, 그 결과 이스라엘 남자들은 그들의 음탕한 축제에 갔으며, "모압의 딸들"을 보고 그들과 

함께 음행을 저질렀다. 

이것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불붙어 그들에게 역병을 보내었고, 그들 중 42000명이 멸망 당하였다.

여기서 "가모"라는 단어의 의미는 "숱한 결혼"이며, 교회가 국가와 함께 연합하는 "영적인 음행" 즉 "발람주의"의

죄를 말하는 것이다.

 

콘스탄틴대제는 이교도들을 교회로 개종하도록 하기 위해 이교도들의 제사장들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할 때

"바실리카스"(Basilicas)라는 웅장한 건물들을 지어주었으며, 교회를 장식할 수 있도록 많은 돈을 지원해 주었다. 

그는 또한 이들에게 최상의 제의(祭衣)를 입도록 해 주었다.

 

주교들은 값비싼 제의(祭衣)를 입고 바실리카의 높은 강단 위의 대리석 제단 옆에 만들어 놓은 은 보좌에 앉게 했다. 

그의 앞에는 낮은 계급이 앉았으며, 금과 보석으로 장식으로 광채를 더했으며, 경배에서 감각적인 형태가 도입되었

으며, 설교의 성격도 바뀌어졌다. 교회에 들어온 이교도들의 구미를 맞추기 위해 "이교도 식"이 교회에 그대로

채택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가지 예로 크리스마스를 들수 있다. 

태양을 숭배하던 이교도들은 12월 21일이 동지로 12월25일이 되면 낮이 서서히 길어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그들은 이 날이 태양신의 아들이 탄생한 날로 생각했다. 이들은 이 날을 거대한 축일로 삼았으며, 로마에서도

각종 써커스를 하며 대대적인 행사를 벌였다. 

주님은 의의 태양이시다. 그래서 교회는 이 둘을 융합하여 12월 25일을 주님이 탄생하신 날로 정하고 이교도의 

태양신(Sun-God)과 일치시켜 버렸던 것이다.

이때부터 전 천년주의는 모두 "후 천년주의"로 바뀌기 시작했다.

교회는 점점 강성해지고 부유해졌다. 교회와 국가의 정교일치는 주님의 재림없이 이 땅에 인간의 힘으로 천년왕국을 건설하겠다는 주장으로 발전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지지해 줄 성경 구절을 얻기위해서 유대인은 영원히 버림받았으며, 유대인에게 약속된 모든 예언은 교회에게로 넘어왔다는 주장을 내 놓았다.

이 기간은 콘스탄틴 대제의 즉위가 시작된 A.D.312년에서 A.D. 606년 보니파스 3세가 우주적인 감독(Universial Bishop)의 자리에 오를 까지이다.  

 

 

 

 

두아티라 교회에 주어진 칭찬은 그들의 행위이다. 그들은 상을 받을 만큼 충분한 수고를 했다. 하지만 이 교회에게도 책망할 것이 몇가지 있었다. 그들이 잘못한 것은 "자칭 여선지자라고 하는 이세벨"이란 여자를 교회에서 용납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가 음행을 "가르치도록" 그냥 두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사람들을 유혹하여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게 했다.

 

이 여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하는 의문이 들 것이다. 이 여자는 선지자가 아니면서 자신을 선지자로 가장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고상한 혈통을 타고 태어났는지 모른다. 그녀는 아마도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그녀의 실명이 이세벨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구약에 나오는 아합의 부인인 이세벨이란 여자와 유사한 인물일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그 여자의 이름을 이세벨이라고 불렀다면 달리 설명이 필요치 않다. 그녀는 아브라함의 딸이 아니었다. 그녀는 투로의 딸이었으며 왕가의 자녀였다. 그녀는 잔인한 성품과 바알과 아스타롯에 대한 열렬한 신앙으로 유명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이드바알(Eth-baal)로써 당시 통치자였던 팔레스왕을 살해하고 왕이 되었다.

 

아합은 이스라엘 왕이었는데, 자신의 왕권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정략적으로 이세벨과 결혼했다. 이세벨은 이스라엘에 바알을 숭배할 수있도록 했으며,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주의 선지자들을 살해했다. 그녀의 영향력은 남편 아합이 살아있는 동안뿐만 아니라 그녀의 두아들인 아하시아와 여호람의 통치기간 중에도 지속되었다.

 

더욱이 그녀는 자신의 딸 아탈리야를 유다의 왕이었던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과 결혼시켜서 우상숭배를 유다땅으로 까지 전파시켰다. 이로인해 예루살렘에도 바알의 산당이 지어졌고 온 이스라엘로 하여금 우상숭배의 죄를 짓도록 만들었던 것이다(왕상 16:29-33).

 

계시록에 나오는 이세벨이란 여자가 진짜 사람인지 그렇지 않는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녀는 "종교제도"를 예표하고 있으며, 그 종교제도는 두말할 필요도 없는 "로마 캐토릭 제도"인 것이다. "성모 교회"(교황 교회)가 등장했을 때 거기에 가는 모든 사람들은 저절로 우상숭배자가 되어 버렸다. 거기에는 "교회의 가르침"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우월한 권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사람이 하나님의 대리자를 자임하고 선지자인양 속이고 있기 때문이다.

 

A.D. 606년부터 종교개혁이 일어난 후 1520년까지 카토릭을 자세히 공부해보면 "피의 미사", "우상 숭배", "이교도 의식"이 난무한 "이세벨주의"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기간은 또한 "십자군 전쟁"과 같은 이세벨식 박해도 있었음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누룩의 비유를 통해서도 이 진리를 잘 배울 수 있는데 두아라 교회의 한 여자 "이세벨"과 복음의 빵덩이 속에 침투한 "누룩"은 똑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기간은 A.D. 606년에서부터 종교개혁이 일어난 1520년까지이다.  

 

 

 

사데 교회는 살았으나 죽은 교회라고 부른다. 이 교회는 형식과 의식만이 존재할 뿐 생명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능력과 생명이 없는 교회는 의식과 형식적인 예배만이 존재할 뿐이다. 사데란 뜻은 "모면하는 사람", 또는 "나오는 사람"이다.

 

이것은 종교 개혁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캐톨릭에서 나온 것을 잘 나타내 주는 말이다.

 

종교개혁을 통해 마틴 루터와 수많은 개혁자들이 캐톨릭의 잘못된 교리와 거짓 가르침, 교권정치의 학정에 항거했다. 이 시기는 1517년부터 시작되었다. 마틴 루터는 독일의 위텐베르그의 수도원에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써 붙임으로써 교황의 독점적 고유 권한을 침범한 항거1자가 되었다. 1517년 10월 31일이 종교개혁의 시발점이다.

 

하지만 이것은 순수한 기독교의 종교개혁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정치 개혁에 가까웠다. 성령께서 도우셔서 이 반박문이 널리 유포되었고, 또 인쇄술로 인해 성경이 많이 발행되었다.

 

이 때까지 캐톨릭에 의해 갇혀져 있던 "이신득의"(믿음으로 의롭게 됨)의 교리가 빛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훨씬 많은 빛을 주었다. 이때까지 로마 캐톨릭 교회는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영적으로 완전히 죽어 있었다.

 

반면에 종교 개혁자들은 그 동안 자행되어 왔던 수많은 종교적 의식과 쓰레기 같은 교리들을 말끔히 제거했지만 주님의 재림에 관한 약속을 회복시키지 못했다. 그들은 우상으로부터 하나님께로 사람들의 마음을 돌이켰지만, "하늘들로부터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지 않았다. 사데 교회는 A.D.1520년부터 1750년까지 지속되었다.  

 

 

 

필라델피아란 단어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문자그대로 "형제사랑"이란 뜻이다. 이 교회는 사데 기간에 있었던 것과 같은 날카로운 교리 논쟁이나 상호간의 적대감대신 형제들간의 친교와 사랑을 강조하는 교회이다. 그래서, 지난 150년간 복음 전도와 선교 사역을 감당했다.

 

이 교회에 관해서는 3가지가 언급되어 있다.

 

첫째, "적은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살아 있으나 영적으로 "죽은" 사데 교회가 영적으로 부활하듯이 부흥을 이루었다. 영적부흥은 필라델피아교회 시대의 특징이다. 이러한 부흥은 A.D. 1739년에 죠지 휫필드에 의해 시작되어졌으녀, 요한 웨슬레와 찰스 피니, 디엘 무디가 뒤를 따랐다.

 

둘째, 그들 앞에는 "열린문"을 두었으며 아무도 그것을 닫을 수 없었다.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 열면 아무도 닫을 수 없고 또 닫으면 아무도 열 수 없는 분에 의해 맺어진 언약을 주목하라.

1793년 윌리암 케리는 배를 타고 인도 갔고 거기에 문을 열었다. 곧이어 주님은 중국, 일본, 한국, 아프리카와 여러 작은 섬들로까지 계속해서 문을 열어 나가셨다. 이제는 지구상에 선교사가 갈 수 없는 나라가 거의 없다.

 

셋째, "시험의 때"로부터 지켜 질 것이다. 이 시험은 온 세계에 닥칠 환란을 말한다. 필라델피아 교회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일곱 교회 중 유일하게 살아남는 교회이다. 머나 기간에 닥쳤던 10번의 시험에 비하면 시험이라고 할만한 어떤 시험도 받지 않았던 교회이다.

"시험의 때"란 미래에 있을 "대 환란"(Great Tribulation)을 의미한다는 점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며, 이것은 주님이 그분의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 오시기 전에 있을 것이다. 필라델피아 교회는 이 환란을 통과하지 않을 것이란 약속이 분명히 주어져 있다. 이 말씀은 교회가 환란을 통과하기 전에 들림 받을 것이란 또 하나의 분명한 증거가 되지 않는가?

 

필라델피아 교회 기간은 1750년에서 1900년까지이다. 우리는 모든 교회들이 결국은 쇠퇴해지고 타락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부흥운동과 선교운동이 필라델피아 교회기간 동안 융성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영적인 능력대신에 일종의 선교사업으로, 기계적인 방법으로 전락하였다.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이 현상은 지속될 것이다.   

 

 

 

 

 

이 교회는 그리스도께로부터 아무런 칭찬도 받지 못하고 책망만 들은 교회이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덥지도 아니하도다. 나는 네가 차든지 덥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그처럼 미지근하여 차지도 아니하고 덥지도 아니하기 때문에 내가 너를 내 입에서 토해 내겠노라.]

 

"미지근한 물"은 혐오감을 일으키거나 구역질을 일으키는 것과 다를 바없다. 그래서 "미지근한" 교회 만큼 그리스도께서 더 싫어하시는 것 없다. 그분은 차라리 차거나 덥기를 원하신다.

 

이것은 쟌 웨슬리가 야외 설교를 하러 온 영국을 순회하러 다니기 전까지 영국 교회의 냉담한 영적인 상태를 잘 묘사한 말이다. 오늘날 우리의 교회들 이 "미지근한 상태"에 있다. 아주 극소수만이 영적으로 덥고 뜨겁다. 교회에는 많은 사람들이 다니지만 대부분은 사업상이거나 사교적인 장소로 다니기 때문에며 위원회, 사교 모임, 클럽처럼 양적 증가는 있으나, "영적인 뜨거움"은 전혀 없다.

 

 

부흥 집회가 열리지만, 주님로부터 오는 능력을 기다리는 대신, 돈을 주고 불러온 부흥사들과 복음 가수들을 고용해서 분위기 띄운다. 이제 구령(救靈)도 하나의 사업이 되어 버린 것일까?

 

"미지근"하게 된 원인은 라오디케아 교회의 특징을 잘 드러내 주는 것이다. 라오디케아 교회는 "자기 기만(欺瞞)"에 빠져 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이며, 부요하고,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지만 네가 비참하고, 가련하며, 가난하고, 눈멀고, 헐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그들은 외적으로 매우 부유했지만 주님은 그들의 마음을 보신다. 오늘날은 이러한 교회들이 도처에 너무나 많이 있다.

 

 

교회사에서 라오디케아만큼 부요한 교회는 일찍이 없었다. 많은 교회들은 성곽같은 웅장한 교회건물을 지었고, 오색찬란한 유리창, 웅장한 강단, 아름다운 성가대, 엄청나게 많은 교인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가난하고 벌거벗은 상태이다. 교회들은 부동산을 사들이기도 하고 은행에 넣어서 이자놀이도 한다. 물론 모든 교인들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대부분은 술을 먹고, 도박을 하며, 춤을 추러 다니고환락의 장소를 들락거리는 아주 세상적인 사람들이다. 가난하고 영적인 사람들은 그런 교회에 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이 출석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눈총거리이기 때문이다. 이런 교회들이야말로 비참하고, 가련하며, 가난하고, 눈멀고, 헐벗은 교회가 아니고 무엇인가?

 

만약 우리가 그런 교회에 초청을 받는다면, 그들은 우리들에게 자기들이 지어놓은 교회의 웅장한 외관을 보여주며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 또한 웅장한 강대상과 수많은 성가대를 자랑하며, 교인수를 자랑할 것이다. 남가주의 어느 대형교회의 목사가 말한다. 저기 세워진 7그루의 종려나무는 남미에서 구해온 수만불짜리라고 자랑한다.

 

 

만약 우리가 "영적인 생활에 관한 질문"이나 "잃어버린 영혼에 관한 구령"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되 그들은 "오.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런 모임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부족한 것이 없어요."라고 말한다. 라오디케아 교회는 잃어버린 자에 대한 빚진 자의 심정으로 눌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거두어 들인 부(富)에 눌려 있다.

 

오늘날 교회가 갖는 가장 큰 문제는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없다"는 사고방식이다. 만약 우리가 돈만 갖고 있다면 세상 사람들을 돌이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돈을 사람을 회심시키지 못한다. 사람을 회심시키는 것은 돈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이다.

 

오늘날 라오디케아 교회가 안고 있는 또다른 문제는 "정의롭지 못한 돈"이다. 그래서 주님은 "불로써 단련된 금"을 사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금은 어떤 종류의 금인가?

 

 

불로써 단련된 금은 깨끗한 돈이다. "녹이 슬지않는 금"은 사기(詐欺)로 얻은 금이나 추수한 일꾼들에게 품삯을 주지 않 그런 금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라오디케아 교회의 모습이 얼마나 잘 묘사되어 있는가?(약5:1-4).

 

라오디케아 교회는 가난하면서도, 눈이 멀었다. 좀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근시안"이다. 그들은 현세의 재물만 탐할 줄 알지 하늘의 영적인 보화를 탐할 줄모른다. 그래서, 주님은 안약을 사서 바르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들은 기름과 박하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안약은 사서 바르지 않는다.

 

 

이 교회는 또한 벌거벗은 교회이다. 그들의 외양은 가장 화려하고 최고급 소재들로 장식되어 있지만, 그런 것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흰 옷"을 사 입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하지만 라오디케아 교회 성직자들은 까마귀같은 검은

제의(祭衣)를 입고 있다.

라오디케아 교회에 주어진 가장 놀라운 계시는 "보라 내가 문앞에 서서 두드리노니"이다.

 

 

이 말씀은 일반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죄인들에게 인용하는 구절이지만 본래는 그런 뜻이 아니다. 주님은 지금 문밖에 서 계신다. 이 문은 라오디케아 교회의 문이다. 지금 주님은 라오디케아 교회 문밖에 서있다는 것은 교회에서 배척을 받고 있다는 의미이며, 다시 들어갈 수있도록 허락해 달라는 뜻이다.

 

 

이것은 신약 성경에 기록된 얼마나 놀라운 말씀인가? 외적으로 그렇게 부요해 보이는 교회가 그 안에는 그리스도가 없으면서도 그 사실을 의식하지도 못한다는 말이 아닌가?

오 주님은 지금 배척 받고 있다.

 

그분의 백성으로부터 배척을 받았다. 왜냐하면 그들이 배척했기 때문이다. 세상으로부터 배척받았다. 세상은 그를 십자가에 못박아 버렸다. 교회로부터 배척받았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 들어가기 위해서 밖에서 문을 두드리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교회밖에 있을 수 있는가? 주님께서 일단 교회안으로 들어가시면 영원히 거기에 거하시던가 아니면 아예 들어가시지 않던가 둘중의 하나일텐데 말이다.

 

 

그들은 자기들 에 주님이 계신지 알지도 못했고, 주님이 떠나신 것을 깨닫지도 못다. 그들은 계속해서 그분께 예배를 드렸고, 그 분을 찬양했고 온갖 종류의 의식을 거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님은 물러나셨다. 이유가 무엇인가? 이유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있다. "세속화"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그의 교회로 돌아올 수 있는가? 교인들의 투표나 초청으로 되는 일인가? 그렇지 않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그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으며 그도 나와 함께 먹으리라."  

 

미지근한 물이 되어 버린 라오디케아 교회를 부흥시키는 길은 바로 각 개인이 자신의 마음 문을 열고 진심으로 주님을 다시 들어오도록 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는 바로 라오디케아 교회의 특징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라오디케아 교회는 주님이 다시 오셔서 "거듭난 교회"들을 데리고 가실 그날까지 계속 될 것이다.

 

교회 전체가 아니다. 개인적이다. 나 자신이 진심으로 마음의 문을 열고 주님을 모셔 들여야 한다. 주님과 동행하는 실제의 삶을 느끼며 살아야 한다.(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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