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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양식/ 강승호목사(순복음중앙교회)

“조국 독립 운동사에 길이 빛날 청산리 대첩의 영웅”

일제 36년 통치하에 조국의 조상님들은 자유가 억압되고 노예의 삶을 살면서 뒤늦게 나마 빼앗긴 조국을 찾고자 국내서는 곳곳에서

의병들이 일어났고 또 한편에서는 해외로 나가 조국의 참상을 알리고자 동분서주 하였고 조국의 산하와 황막한 만주땅과 시베리아

까지 진출해서 애국 지사들은 청춘도 공명도 저버리고 하늘을 지붕삼고 춘하 추동 조국 독립을 위해 투쟁했고 꽃다운 청춘을 조국 

독립을 위해 수 많은 애국 지사들과 의병과 선열들과 조상님들이 오늘의 후손들을 위해 장열히 희생한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살고 있음을 감사하며 그들을 추모하고 조국의 역사 의식을 고취하며 민족의 정체성과 자립심을 망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필자는 조국 독립을 위해 수 많은 애국 지사들과 조상님들 가운데 무작위로 3월 호국의 달을 생각하며 지면상 독립운동 전쟁사에 

길이 빛나는 생각나는 한 사람을 소개 하고자 한다. 

이름하여 청산리 대첩의 영웅으로 불리는 백야 “김좌진”(1889-1930)장군을 소개 한다.


그는 충남 홍성에서 명문가 김형규의 둘째 아들로 출생, 그의 백부는 한말의 혁명가 ‘김옥균(1851-1894)이다. 

김좌진은 호탕무상 하면서도 따스한 인간미가 깃들여 있었다. 

그가 15세 때 서울로 간 형대신 고향 살림을 맞게되자 진취적 개화 사상이 강한 그는 노비 문서를 불태워 노비들을 해방 시키고 

그들에게 돈과 재물을 나누어 주었다.

그는 경술 국치 후 홍성에 호명 학교를 세워 후진 양성을 하다가 1913년 대한 광복단에 가입하여 활약 하다가 1915년 군자금 

모금 혐의로 일경에 잡혀 3년간 복역하고 출옥 후 “남아가 실수하면 용납 할 땅이 없지만 지사가 구차히 살려고 하면 다시 때를

기다림일세”라고 하였다.

1917년 만주로 망명한 후 13년간 조국 광복을 위해 40평생을 다 하였다. 

그는 3, 1 민족 혁명 이후 군정회를 조직, 본거지를 왕정현에 두어 3분단 110여개소의 지회를 설치, 

광복 운동 활성화에 심혈을 기우렸다.

그는 이를 임정휘하에 북로군으로 개편한 뒤 총사령관이 되어 1,600명 규모 독립군을 훈련 시켰는데 이 부대는 만주 일대에

막강한 군대가 되었다. 1920년 후 10여 년간 본격적인 항일 전투를 벌렀다.

1920년 10월20-23일 ‘청산리 80리 계곡에서 ’이범석‘(1900-1972), '나중소’ 등과 일본 제19, 21사단의 연대병력 3,300명을 맞아

제1연대장 ‘홍범도’(1868-1943), 제2연대장 ‘김좌진’ 제3연대장 최진동이 독립군 연합 전선을 펴 10여 회의 격전을 전개하여 

일본군 1,300여 명을 일시에 섬멸 시켰다.

이것이 그 유명한 ‘청산리 대첩’이며 ‘봉우리 전투’와 함께 독립 전쟁사상 최대 승리로 꼽는다. 김좌진장군 휘하에 독립군은

60여 명 전사, 90여 명이 부상 당하는 경미한 피해를 입었을 뿐이다. 그 후 흑룡강으로 전진하여 국민회군(안무), 도독부군

(최진동) 등과 연합하여 대한독립군단을 결성하여 부총재에 취임 하였다.


1925년 김혁, 조성환, 정신 등과 함께 통합된 기관을 신민부라 칭하였다. 

신민부는 중앙집행위원회, 참의윈, 검시원의 삼권 분립이라는 민주 체제를 구축하고 통합기관으로 출범하여 백야는 중앙

집행위원장이 되어 민족 통합과 대동 단결을 호소했다. 또한 사관학교를 설립하고 부교장으로 500여 명독립 군단 간부를 양성했다.

김좌진에게는 이런 가족사가 있다. 

김좌진은 일경에 피하다가 급하게 양반집 규수 공부 방으로 피했다가 놀란 처녀에게 자기 신분을 밝히니 그를 장롱속에 숨겨 주었다

, 그 녀가 박상중의 딸 박주숙 이었다. 

약간 부상으로 그 집에 머무는 동안 그 둘 사이에 생긴 아들이 조국 영화에 소개된 ‘장군의 아들 김두환’이다. 

그 후 백야는 “혁명가는 예고없이 떠나는 법이네”라는 말을 남기고 그 집을 떠나고 말았다.

부자 상봉은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조국 광복 한 길을 위해 개인의 삶마저 철저히 희생 하였다.

1929년 한족 연합회를 결성, 주석에 취임 후황무지 개간, 문화 계몽 사업및 독립정신 고취와 단결을 호소하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고려공산당 청년회 김일성(1912-1994)의 감언이설에 빠진 박상실의 흉탄에 맞아 집앞에서 42세로 영면하였다.

성경에 동족을 위해 울부짓던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 같은 선각자가 그리워 진다.(잠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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