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ebook.png  twitter.png



고장로 *.37.27.125 조회 157665 2012.06.04 08:27

왜 우리는 반역하는가

 

“그러나 그들은 그가 행하신 일을 곧 잊어버리며 그의 가르침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내며 사막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였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요구한 것을 그들에게 주셨을지라도 그들의 영혼은 쇠약하게 하셨도다.”(시106:13-15)

 

필자가 1년 전에 한국에 살고 있을 때, 매주일 출석성도 몇 천명을 이끌고 있는 대형교회의 중견 목회자들이 ‘돈, 여자. 명예욕’ 으로 추락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중의 한 분은 십여 년 이상을 섬겼던 목회자여서 느헤미야 같은 심정으로, 조국 교회와 그 분을 위해 한동안 새벽마다 눈물로 회개와 용서를 간구하는 기도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런 문제가 발생한 교회의 문제로 끝난다면 얼마나 다행이겠습니까? 그러나 그 교회에 다니던 수많은 성도들이 실족하고, 그 지역 내지 나라 전체에 충격을 주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지상에 온 목적인 복음사역에 막대한 차질을 빚게 되니 말입니다. 이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도 똑같이 목회자들의 세속화를 우려하고 걱정하고 있습니다.

한 개인의 재정에 있어서도, 하나님 나라의 질서가 무너질 때는 추락하는 대형교회의 모습과 같이 가정 내지 교회 공동체 그리고 지역사회, 더 나아가서는 국가 사회에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것은 마치 2008년 가을부터 5년째 계속되고 있는 세계경제의 불황이 미국가정들의 과다 차입한 주택융자(모기지론)에서 촉발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본문 시편 106편은 105편과 연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105편에서는 이스라엘 역사 속에 행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여주는데, 106편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 나타나는 불신앙과 반역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105편과의 연속성 속에서 볼 때 “여호와께 감사하라”로 시작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 행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불신하였고 그들의 역사는 불신과 반역의 역사 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비하시고 신실하시고 오래 참으심으로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이 시는 국가적인 참회로 시작합니다 그 가운데서 본문 시편 106편 13-15절 까지 의 말씀은 광야에서 방황할 때 범죄한 6가지의 죄 중 불평불만의 죄로 민수기 11장 4절에서 35절까지의 기브롯 핫다아와(탐욕의 무덤)사건과 출애굽기 17장 2절에서 7절까지 맛사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여호와 하나님을 시험하여 반석에서 물을 내는 사건을 회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만나를 먹고 탐욕이 자란 이스라엘은 은혜의 만나에 싫증을 느끼고 애굽 종살이 할 때 먹곤 했던 고기를 요구합니다.(민11:4-6) 시달림을 받은 모세는 하나님께 불평을 합니다.(민11:10-15) 하나님은 그들의 요구에 응하시지만(민11:16-23,31-32)결국 그들의 탐욕을 징벌하셨습니다.(민11:33-35) 이렇듯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요구한 것을 받았을 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불평과 불만을 털어놓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지 않는 불순종 에다가 탐욕을 내어 큰 재앙을 받게 됨과 아울러 탐욕을 낸 백성들은 거기서 죽게 됩니다. 이에 더해 맛사 에서 모세에게 물을 요구하여 하나님을 시험하는 죄까지 지어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혼이 쇠약해졌다고 시편 기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네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시106:13)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통해 이집트에서 행하신 표징과 기사도 보았고 또 재앙까지 보았습니다 그 재앙을 통해 이집트를 나오게 하셨고 홍해도 갈라주시며 구름과 불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시기도 햇습니다.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고 반석을 가르시어 물을 내셔서 마른 땅에 강같이 흐르는 은혜를 맛본 민족 이었습니다. 그런데 밤에 이슬과 함께 내린 만나를 먹은지 채 1년도 되지 않아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은혜를 잊어버리고 불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은혜를 잊어버리면 불평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이 처음으로 하나님께 반역한 사건을 기억해보면, 홍해를 앞에 두고 이스라엘 민족 뒤에 이집트의 왕, 바로군대가 뒤 쫓는 상황에서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출14:11)하고 반역하게 되는데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께 최초로 반역하는 이스라엘 민족이 범한 모든 죄의 뿌리가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8장 12절에서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포로이후 새 언약을 주시면서 영원한 죄 사함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렘31:31-34)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는 것이 ‘불의’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불의가 무엇입니까? 불의는 헬라어로는 ‘아디키아’(adikia)인데 이것은 ‘의’에 반대되는 것입니다. 의는 하나님의 나라에 발견되는 특징 중의 하나이고 “오직 성령 안에서의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17)고 했습니다. 이 헬라 단어는 악, 불법, 반역, 범죄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세상 안에 이미 깊숙이 들어와 불법이 비밀히 활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살후2:7)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니 처음에는 불의가 이스라엘 민족 중에 섞어 사는 이방인들 에게 탐욕의 형태로 오고(민11:4) 그 다음에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불평과 불만, 그리고 원망의 형태로 들어옵니다. 급기야는 모세까지도 불평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처럼 불의는 사탄과 결부하여 하나님을 반역하는 악한 추진력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가르침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시106:13)

 

이스라엘 민족은 많은 기적과 이사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이 없는 사람들과 같이 불순종했고 불평과 불만, 심지어는 원망까지 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이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지 그들은 하나하나 세워 보면서 하나님께 나아갔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믿음으로 순종하여 간구하고 기다렸다면 하나님의 또 다른 공급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최초에 하나님께 반역했던 죄의 뿌리 즉 ‘불의’가 계속적으로 작용하여 그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은 불신앙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은 이집트를 나와서 광야까지 오는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채우신다는 것을 경험했으면서도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내가 어디서 얻으리이까”(민11:13) “그들을 위하여 양떼와 소떼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족하오리까”(민11:22) 이렇게 모세도 하나님 앞에 반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보행자 60만 명에게 일개월동안 메추라기를 먹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상할 수 있으면서도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필요를 채우신다는 약속을 그 당시 충분히 예상하고, 어떤 방법으로든 공급하실지 알았어야 하는데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공급이 끊어질까봐 두려워하면서도 하나님께 원망 했습니다.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애굽에 있을 때가 우리에게 재미있었다”(민11:18) “이는 너희가 너희 중에 거하시는 여호와를 멸시하고 그 앞에서 울며 이르기를 우리가 어찌하여 애굽에서 나왔던고 함이라 하라”(민11:20)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민11:23)고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않고 불평과 불만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신실하게 그분의 약속을 이행하셨고 지금도 지키고 계십니다.

 

셋째는,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내었습니다.(시106:14)

 

“이스라엘 중에 섞어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으매”(민11:4)처럼 일반적으로 탐심과 욕심의 정의를 섞어 사용합니다. 욕심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더 원하는 것인 반면, 탐심은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을 원하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탐욕을 품으면 ‘불의’가 들어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게 됩니다. 그것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소유하겠다는 욕망에서 출발합니다. 누가복음 12장 16-20절에서 예수님은 더 많은 곡식과 물건을 저장하기 위해 계속 곳간을 짓고 있는 한 부자의 이야기를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마지막에 하나님은 그를 어리석은 자라고 부르시며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의 소유물을 신뢰하였기에 생명을 잃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4절 말씀에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함께 탐욕 을 품게 됐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같이 살고 있는 외국인들에 의해 이스라엘 민족도 불신앙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민수기 11장에 나타난 큰 재앙의 원인은 바로 탐욕을 크게 나타낸 것 때문이었습니다. 정욕이나 탐욕이란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거룩하지 못한 소원이고, 건강하지 않은 욕심이며, 의롭지 못한 생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또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 몸을 거룩히 하여 내일 고기 먹기를 기다리라”(민11:18)고 한 것입니다. 또한 얼마나 화가 나셨으면 하나님께서는 “코에서 넘쳐서 싫어하기까지 일개월 간을 먹게 하시리니”(민11:20)고 하였습니까? 그 이유를 “이는 너희가 너희 중에 거하시는 여호와를 멸시하고 그 앞에서 울며 이르기를 우리가 어찌하여 애굽에서 나왔던고 함이라 하라”(민11:20) 고 말씀하셨습니다. 불의가 이스라엘 민족에게 들어가 하나님께서 주신 만나를 경멸함으로써 여호와 하나님을 멸시하고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가나안을 열망하기보다는 이집트를 떠나온 것을 후회하게 합니다. 그 결과, 이런 탐욕을 부린 백성에게 내린 하나님의 심판으로 돌연한 떼죽음의 징계를 내리신 것입니다. 그것이 유명한 기브롯 핫다아와 사건(탐욕의 무덤)인 것입니다.

 

넷째는,이스라엘 민족은 사막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였습니다.(시106:14)

 

하나님은 자신을 시험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십니다. 사탄은 예수님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마4:6)고 하면서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신명기 6:16, 마태복음 4:7)”고 하시면서 단호하게 하나님을 시험할 수 없다고 사탄의 유혹을 거절했습니다.

 

르비딤에서 이스라엘 민족도 똑같이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아침에는 만나가 어김없이 내리고 있고,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어김없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자기 백성을 먹이시고 부족한 것을 채워 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아침마다 저녁마다 보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물이 없는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그들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구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렇지 않고, 하나님께 원망하고,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이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를 시험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반석에서 물을 내서 마시게 했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이스라엘 민족이 아직은 영적으로 어리기 때문에 하나님의 시험하심을 그냥 허락했습니다. 그러나, 마냥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시험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그 때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불뱀을 보내서 시험하는 사람들을 물어 죽게 했습니다(민수기 21:6). 이후에도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에서 홍해 건너기 전에 범한 최초의 죄 쓴 뿌리 즉 불의가 계속 작용해서 하나님께 시험하기도 하고 반역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앞으로도 이스라엘 민족 같은 사람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시험하고 반역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9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자기 백성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께서 르비딤에서는 자신을 시험하는 자기 백성들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영원히 기억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장막을 치고 머물렀던 시내 광야의 르비딤을 하나님을 원망하고 다투었다고 해서 ‘맛사’라고 했고, 하나님을 시험했다고 해서 ‘므리바’라고 이름을 바꾸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잘못과 범죄를 용서는 하시지만, 그냥 넘어가시지는 않습니다. 맛사와 므리바를 영원히 기억하게 하셨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읽는 우리들까지 하나님께서는 시험하지 않도록 경계를 삼도록 하셨습니다.

 

끝으로, 이스라엘 민족이 요구한 것을 주셨을 지라도 그들의 영혼은 쇠약하게 하셨습니다(시106:15)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며 하나님의 가르침을 기다리지 않고 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내며 사막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런 불신과 반역의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자비하시고 진실하시고 오래 참으심으로 그들이 요구한 것을 주셨지만 죄에 대해서는 끝까지 징계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긍휼은 그들의 죄와는 상충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데 시편 기자는 이스라엘 민족의 영혼은 점점 쇠약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은”(여14:9) 여호수아와 갈렙만 빼놓고 광야에서 다 죽게 되었고 그 후손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비록 이 시가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사에 대한 회개와 감사를 드리고 있지만 우리 인간들이 언제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그 분의 말씀을 기다리지도 않고 욕심을 내야만 하는가. 심지어는 하나님을 시험까지 하지 아니한가. 정말 필자로서는, 이 시편 기자처럼 하나님께 무섭고 떨리는 마음으로 회개의 자리에 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profile 고장로
Lv.1  Point.285

회원정보 보기 작성 글 보기
자기 소개글이 없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sort 글쓴이 날짜 조회
16 정직-라합의 거짓말 보고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1] 고장로 2012-06-11 499433
» 조언- 왜 우리는 반역하는가 [22] 고장로 2012-06-04 157665
14 조언-하나님의 음성을 어떻게 듣는가? [1] 고장로 2012-05-28 404658
13 부채-재정에 있어 영적전쟁 [614] 고장로 2012-04-23 351591
12 부채-성경으로 돌아가자 [1] 고장로 2012-04-11 475108
11 부채-빙판에 미끄러지는 자동차 [1] 고장로 2012-04-05 562217
10 부채- 공포의 고리(ring of fear) [75] 고장로 2012-03-29 107989
9 우리의 역활-얼마면 충분한가 [115] 고장로 2012-03-20 257044
8 하나님의 역할-형통하는 삶 [2] 관리자 2012-03-12 538435
7 하나님의 역할- 네가 온전하고자 하느냐 [153] 관리자 2012-03-09 92032

서비스 링크

X
Login

브라우저를 닫더라도 로그인이 계속 유지될 수 있습니다. 로그인 유지 기능을 사용할 경우 다음 접속부터는 로그인을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단, 게임방, 학교 등 공공장소에서 이용 시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 있으니 꼭 로그아웃을 해주세요.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