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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합의 거짓말 보고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두 사람을 정탐으로 가만히 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그 땅과 여리고를 엿보라 하매 그들이 가서 라합이라 하는 기생의 집에 들어가 거기서 유숙하더니”(수 2:1)

“여리고 왕이 라합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네게로 와서 네 집에 들어간 사람들을 끌어내라. 그들은 이 온 땅을 탐지하러 왔느니라.’ 그 여인이 그 두 사람을 이미 숨긴지라. 가로되,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 그들이 어디로서인지 나는 알지 못하였고 그 사람들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쯤 되어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하되 급히 따라가라. 그리하면 그들에게 미치리라’ 하였으나 실상은 그가 이미 그들을 이끌고 지붕에 올라가서 그 지붕에 벌여놓은 삼대에 숨겼더라.” (수 2:3~6)

“라합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렵건대 따르는 사람들이 너희를 만날까 하노니 너희는 산으로 가서 거기 사흘을 숨었다가 따르는 자들이 돌아간 후에 너희 길을 갈지니라”(수 2:16)

 

필자가 한국에서나 미국에서 같은 한국인 대상으로 하는 성경적 재정교실을 인도하면서 차이를 확실히 느낀 점은 ‘정직’ 이라는 과목입니다. 미국문화가 한국보다는 선진적인 문화여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미국 문화가 한국보다는 정직성이 더 많이 요구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세상에서도 이렇게 선진적인 문화 일수록 정직성이 더 많이 요구되는데 하물며 하나님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더 많은 정직성 즉 ‘온전한’ 정직성을 요구하십니다. 아무리 사소한 부정직이라도 모두 죄이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침해하는 것입니다. 아주 작은 ‘악의 없는 거짓말’은 우리 마음을 굳어지게 하며, 죄로 말미암아 양심은 점차 둔감해지고 귀는 하나님의 음성에서 멀어집니다. 부정직이라는 작은 암세포 하나가 번식하면 더 큰 부정직이 됩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눅16:10).

 

그런데 위 본문에 나오는 라합의 보고는 거짓말인 것이 분명합니다. 그는 정탐꾼 둘을 지붕위의 삼대에 이미 숨겨 놓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성문 밖으로 나갔다고 이야기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라합의 행위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은 신약성경의 증거에 의해 알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 (히 11:31)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이 아니냐?” (약 2:25)

라합이 정탐꾼에 대해 취한 조치를 가리켜 히브리서와 야고보서의 기자들은 “행함으로 온전케 된 믿음”이라고 평가합니다. 그런데 이 조치 가운데에는 거짓말이 들어 있었고 만일 라합이 이런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면 정탐꾼을 살려보내는 일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은 거짓말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물론 성경은 종합적으로 보면 거짓말은 악하고 죄된 것으로 평가합니다. 거짓말은 하나님의 본성이나 성품과 반대된다고 합니다 .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食言)치(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민 23:19)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을 주시면서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명하십니다.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출 20:16)

또한, 하나님께서는 거짓말을 악의 한 가지로, 거짓말하는 자는 악한 자로 취급하십니다.

“저희가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 (시 12:2)

 

본문 내용을 중심으로 라합의 거짓말 보고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세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어떤 상황에서 그러한 거짓말 보고가 이루어졌는가

 

본문에서 보듯,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과 여리고성을 정복하려할 때 기생 라합은 이스라엘 군대의 두 정탐꾼을 지붕위의 삼대에 숨겨놓고 거짓보고를 하였습니다. 그 때 그녀는 정탐꾼을 추격하기 위해 찾아온 자국의 군인들에게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 그들이 어디로서인지 나는 알지 못하였고 그 사람들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쯤 되어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하되 급히 따라가라 그리하면 그들에게 미치리라(수 2:4-5)고 말했습니다. 이 사실만 보면 분명히 거짓말 한 것이 됩니다. 여기서 많은 학자들은 기생 라합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갖고 논란을 벌입니다. 거짓말은 어찌하든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물론 외적으로 보면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거짓말은 사탄의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항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요한 사항은, 여리고 왕과 그 휘하 군인들에게 한 ‘거짓말 보고’가 아니라 이스라엘 군대의 두 정탐꾼을 ‘환영’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환영하였다”(히 11:31)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때 라합은 두 정탐꾼을 통해 홍해 사건과 이스라엘이 아모리왕들을 멸한 사건을 언급하면서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한다”(수 2:9)고 했습니다. 이것은 여리고성 사람들이 출애굽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듣고 있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수2:10). 그리고 기생 라합은 다른 여리고성 사람들과는 달리 그런 소식을 들으면서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탐꾼들이 왔을때 그녀의 믿음은 어느덧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에 하나님이시니라”(수 2:11)고 신앙 고백할 만큼 자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이스라엘의 두 정탐꾼을 보호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야고보서 에선 “기생 라합이 사자를 대접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약 2:25)고 말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성경에서는 이와 유사 사례는 없는가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자와 부아라 하는 자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조산할 때에 살펴서 남자여든 죽이고 여자여든 그는 살게 두라.’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을 어기고 남자를 살린지라. 애굽 왕이 산파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 이같이 하여 남자들을 살렸느냐?’ 산파가 바로에게 대답하되,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 하매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라. 백성은 생육이 번성하고 심히 강대하며” (출 1:15~20)

 

히브리 산파들의 답변은 분명 사실과 거짓이 함께 담겨 있는 듯 합니다. 히브리 여인의 아이들이라고 하나 똑같이 그런 식으로 태어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바로 왕에 대한 산파들의 답변을 긍정적으로 보셨다는 뜻입니다.

 

“헤롯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하니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마 2:1-3)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마 2:7-8)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마 2:12)

 

위 성경 구절은 주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 경배하러 왔던 동방박사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때 헤롯 왕은 박사들에게 아기를 찾으면 자기에게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자기도 가서 경배하겠노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왕의 말은 거짓이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갈 때 다른 길로 돌아가고 왕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왕은 박사들에게 속았다고 분개하면서 연령을 추산하여 많은 아기들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처음부터 동방박사들은 당연히 왕과의 약속을 지키겠다고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러한 마귀적인 사람, 헤롯왕과 약속을 지킬 필요가 있으며 참된 상황을 말해줄 필요가 있겠는가?

 

결론으로, 라합의 거짓말 보고가 믿음에서 나온 불가피한 행위였지 라합이 의도적으로 한것은 아닙니다.

 

여리고 왕과 그 휘하 군인들에게서 기생 라합은 가족들과 함께 죽음을 당하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서 그녀는 믿음으로 정탐꾼들을 살려야 겠다는 일념하에 거짓말을 했던 것입니다.

그 거짓말을 잘못됐다면 성경기자는 지적했을 텐데 그러한 성경 구절은 없고 히브리서 기자와 야고보서 기자는 라합의 행위를 의로운 사건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그 믿음을 인정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는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많은 학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기생 라합의 행동을 의롭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중 거짓말을 한 부분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왜 그렇게 일어날 수 밖게 없는 상황인가를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판단기준의 주체를 인간이 아닌 하나님께로 올려놓는다면 기생 라합의 거짓말 보고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아울러 영적인 시야로 보면, 이집트 바로왕을 속인 산파나 헤롯왕을 속인 동방박사나 다같이 사탄을 속인 것이지 인간들(?)을 속인 것은 결코 아니다는 것입니다. 이런 논리로 가면 성경에 나오는 거짓말의 사례에서 긍정적인 경우의 거짓말이라 할지라도 사안에 따라 그 윤리적 타당성의 정도가 다르고, 부정적인 거짓말 또한 악성의 정도가 각각 다르다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모든 거짓말을 일률적으로 죄악된 것이라고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항상 성경으로 돌아가고 성경에 비추어 보아 판단하는 것이 최선의 해석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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