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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로 *.37.27.125 조회 375039 2012.06.18 09:11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행 2:37-41)

 

필자가 한국에서 다니던 직장을 퇴직하고, 의미 있는 인생을 살기위한 후반전을 준비하는 의미에서 호스피스사역을 안양 샘 병원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말이 말기 암 병동이지 실제는 이승과 저승의 터미널인 것입니다. 이 병동에 들어오면 대부분 한 달 이내에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 때 어느 대기업에서 중역으로 근무하시던 분이 열심히 직장 생활 하다가 건강검진에서 늦게 사 암을 발견하여, 이제는 가망이 없다고 말기 암 병동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분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분이셨습니다. 대개 암 환자들이 겪는 심경의 변화를 거쳤는지 상당한 자제력과 인내력이 있는 정신력이 강한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의 눈빛은 섬뜩하리 만큼 무서울 정도로 원망과 분노에 차있는 눈빛이었으며 몰골은 그야말로 뼈만 남은 앙상한 가지 같았으니 아무도 가기 싫어했습니다. 그런 분이 예수님을 만나자마자 지난날의 죄와 잘못을 회개하며 회한의 눈물을 계속 뚝 뚝 흘리기만 했습니다. 그리고는, 며칠 후에 “자신이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지었다.” “이 죄를 어찌할꼬!” 하며 통곡하며 울면서 믿음의 고백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고백 후에 눈빛이 변하고 얼굴 모습이 인자한 모습으로 변하며, 신체도 다시금 살이 붙는 것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다음날, 그 분은 모든 것을 정리한 뒤에 주님이 계시는 천국을 소망하면서 기쁜 모습으로 가는 것을 감격스럽게 본 광경이 떠오릅니다.

 

그렇습니다. 이처럼 회개, 즉 죄의 자백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 분 같은 구원을 위한 회개는 한 개인의 일생에서 한 번 밖에 없습니다. 우리들이 잘 아는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 37문에는 “생명에 이르는 회개가 무엇입니까?” 라는 물음이 있습니다. 이 물음의 답으로 “생명에 이르는 회개는 곧 구원에 이르는 회개인데 이로 말미암아 죄인이 자기 죄를 바로 알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비를 깨달아 자기 죄에 대하여 슬퍼하고, 미워하고, 그 죄에서 떠나 하나님께 돌아가서 굳은 결심과 노력으로써 새롭게 순종하는 것입니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참된 회개를 하지 못한다면 생명 즉 구원에 이르렀다고 말 할 수 없습니다. 생명에 이르는 회개는 하나님의 은혜이며 구원에 이르는 은혜입니다.

 

본문 말씀 사도행전 2장은 오순절 날 베드로 설교 시에 성령께서 강림하셔서 각 나라에 모인 사람들이 베드로 설교를 자기들의 말로 듣게 되는 놀라운 사건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어 주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하며 청중들에게 “여러분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주님과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증가할 때 본문 말씀이 나오면서 청중들은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려 ‘우리가 어찌 할꼬’ 탄식과 자기들의 죄를 자백하게 됩니다. 베드로가 권유하여 회개하여 세례를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는 내용들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은 회개를 중심으로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는, 구원에 이르는 회개는 먼저 예수그리스도가 존재해야 합니다.

회개’라는 말은 헬라어로 ‘메타노이아’ 인데, 이는 ‘생각의 전환’이라는 뜻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모르고 그를 부정한데서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데로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생각이 바뀌어야 삶이 바꾸어집니다. 본문 37절에서 아무 죄도 없는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것을 두고 마음에 찔러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 할꼬” 했을 때 38절에서 베드로 사도가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회개는 예수그리스도께 돌아와 그를 인정하고 그를 믿고 의지하여 그 앞에 복종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은 죄 사함을 위한 것입니다. 즉 세례는 죄를 씻는 의식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의 피로 죄 씻음을 받는 것을 표시하고 확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죄인이다. 예수그리스도는 나의 구주이시다.”라고 신앙 고백해야 생명에 이르는 회개에 이르게 됩니다.

 

둘째로, 참 회개는 예수그리스도 십자가에서 자기의 죄를 발견하게 됩니다.

 

본문 37절에서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 할꼬”하는 내용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힘은 자기들 죄 때문에 그렇게 됐다고 탄식하는 내용하는 내용입니다. 내 죄가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찔렀고 내 허물이 그를 죽였다고 하는 마음에서 참 회개는 출발하게 됩니다. 이런 회개에서 만이 애통과 슬픔이 나옵니다. 아사야 서 53장 5-6절에서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고 이사야 선지자는 적고 있습니다.

 

셋째로, 구원에 이르는 회개는 죄의 자리에서 돌이킵니다.

 

본문 38절에서 베드로 사도의 권면에 의하여 본문 39-41절에서 즉시 회개하고 세례 받은 사람들이 삼천 명이 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예루살렘 교회는 120명이었는데 이 날 한번에 3천명이 회개하고 세례 받고 교인이 된 기적과 같은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입니다. 이렇듯 회개는 인생길에 방향의 전환 즉 생각의 전환이 뒤따라야 합니다. 인생들은 모두 지옥이라고 하는 무서운 함정을 향하여 넓은 문을 통하여 넓은 길로 달려가고들 있습니다. 그 멸망의 인생길에 예수그리스도 십자가가 등장하여 이 길에서 돌이켜 생명의 길로 들어가기를 경고해 줍니다. 이처럼 회개는 멸망의 길에서 생명의 길로 돌이키는 생각의 전환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글에 게재한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서 돌이키는 회개의 뜻을 다시 한 번 살펴봅시다.

누기복음 15: 11-24에서 돌아온 탕자는 넓은 길로 달려가는 사람들의 표본입니다. 그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했지만 자신이 원했던 행복은 아무 곳에서도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결국 돼지 치는 집에 머슴으로 들어가 돼지가 먹는 지엄 열매로 양식을 삼았지만 그것조차도 배불리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줍니까? 현세에서 아무리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라도 그 길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인생은 탕자처럼 될 것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런 탕자의 마음속에도 생명의 빛이 들어왔습니다. 그는 아버지를 바라본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걸어온 인생이 아버지를 슬프게 한 죄악의 길 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아버지 집에 있는 풍성한 축복을 소망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후 어떻게 되었습니까? 발걸음을 아버지 집으로 돌이켰다고 했습니다. 그가 아무리 객지에서 아버지를 생각했다고 해도 생각에만 그쳤다면 그냥 그 자리에서 굶어 죽어 버렸을 것입니다. 그가 살 수 있었던 것은 그 자리에서 자기 몸을 일으켜 아버지께로 향하여 출발한데 있었습니다. 과연 그는 아버지의 극진한 영접을 받으며 그 때부터 놀라운 축복의 생활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에 반해, 한 때는 예수님의 제자였던 가롯 유다는 자기가 무죄한 스승을 팔았다고 후회하며 슬퍼했지만 그는 돌이키지 못하고 자살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 앞에서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저주하며 부인하는 죄를 범했지만 그는 회개하고 돌이켰습니다. 그래서 그는 더 큰 그릇으로 쓰임 받았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이 같은 회개가 평생을 통하여 연속적으로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그는 점점 죄의 길에서 떠나게 되고 생명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 칼럼을 읽는 형제자매님!

 

회개는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마음으로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또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자신의 죄를 철저히 고백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생명에 이르는 참된 회개가 되려면 죄에서 돌이켜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삶의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상 예수그리스도를 보지 않고 회개하는 것은 윤리적인 회개입니다. 이처럼 생명에 이르는 회개에 있어서 죄의 자백은 매우 중요합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은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 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들이 회개할 때 ‘나는 죄인이요. 나의 힘으로는 나를 구원할 수 없다’ 는 것을 인정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전적인 구원을 믿는 신앙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한 분도 빠짐없이 회개와 믿음의 결단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으시길 바라고,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시면 집 근처 지역 교회를 찾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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