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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8919 2011.04.15 11:31
[인터뷰] '나의 설교를 말한다' (1) 이동원 목사
newsdaybox_top.gif 2011년 04월 08일 (금) 21:44:59 [조회수 : 1318] 한종호 ( btn_sendmail.gif 기자에게 메일보내기 ) newsdaybox_dn.gif

처음에는 싹이 돋고 그 다음에는 이삭이 패고… 옛날 옛날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가 정원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66종류의 씨앗을 마련했다. 그 씨앗에는 땅에 떨어지기만 하면 저절로 자라나 움을 틔우는 강한 생명력이 간직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그 씨앗을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라고 했다. 이 씨앗은 뿌려지는 마음밭 어디에서든 하나님나라의 기쁨과 평화의 꽃을 흐드러지게 피워낸다. 자신의 인간적인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힘입어 말씀을 증거하는 직분을 맡았기에”(고후 4:1)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에게 말씀의 씨앗을 움틔우며 말씀의 봉사자가 된 것을 가장 고상한 사명으로 생각하는 이동원 목사는 모름지기 설교자의 길을 천직(天職)으로 알고 지속적인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는 복 있는 사람이다. 하루하루 자고 일어나는 사이에 씨앗은 싹이 트고 자라나지만 씨를 뿌리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을 알기에 누구를 대하든 어떤 장소이건 한결같은 마음으로 설교자의 길을 걸어온 이동원 목사의 여정을 돌아보았다.

한종호 / 목사님께서는 유학 시절 윌리엄틴데일대학에서 졸업생에게 주는 ‘그해의 설교자(Preacher of the Year)’로 선정되는 영예를 받으면서 설교자로서 출중한 자질을 보여주셨고, ‘설교자들의 설교자’라는 호칭을 들을 만큼 한국 교회의 대표적인 설교자로 자리매김해 오셨습니다. 설교에 관한 한 나름으로 그런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분이신데, 목사님의 설교에 대해 대구성서아카데미 원장이신 정용섭 목사님께서 비평하신 글을 접하셨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요.

이동원 / 저는 설교비평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하고 있는 ‘설교 클리닉’에서 한 회에 25명의 후배 목사님들과 그분들의 설교와 제 설교를 분석하고 비평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비평에 대해 익숙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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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원 목사. ⓒ 한국 <뉴스앤조이>
한종호 / 그래도 <기독교사상>이라는 공적인 잡지에서 목사님의 설교를 공개적으로 비평한 글은 설교클리닉에서의 비평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드셨을 것 같은데요.

이동원 / 두 가지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은 있습니다. 하나는 일부가 아닌 전체적인 측면에서 조망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한 사람에 대해 몇 마디로 규정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예전에 보수 진영의 사람들이 진보적인 분들을 비판할 때 ‘좌파’라는 딱지를 붙였습니다. 일종의 이념 공세지요. 정 목사님의 비평에서 저를 비롯해 몇몇 사람들에 대해 그와 같이 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저에 대해서는 영어를 많이 사용한다고 ‘친미사대주의’라 하고 공산주의에 대해 몇 마디 던진 말을 갖고는 ‘반북’으로 규정하더군요. 저는 미국에 대해 제 견해를 밝힌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북한에 대해 한 설교가 참 많습니다. 1년에 한두 번씩은 북한에 대해 메시지를 전합니다. 특히 설교집 <양심 클린토피아>는 윤리적 설교인데 민족의 화해를 위하여, 섬김의 의식을 갖고 북한을 대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주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런 내용은 살펴보지 않고 반북으로 단정 짓는 것은 객관성을 상실한 경우이지요. 일부만 보고 확대 해석하여 한두 가지로 “ ~주의자”라고 규정하는 것은 조심해야 된다고 봅니다. 정 목사님이 저에게는 ‘규범적 허무주의’라는 딱지를 붙였지요. 꽤 많은 설교자를 다뤘던데 정 목사님이 선호하는 스타일과 달라 우호적인 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또 하나는 인격적인 존중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당사자와 독자의 공감을 얻을 수 있기 위해서는 인격적 존중과 신학적 입장의 차이를 인정하고 선행되어야 비평이 건전하게 갈 수 있고 건강한 대화가 이루어 질 수 있는데 그런 부분이 좀 아쉽지요.

이동원 목사의 솔직한 자기 고백

한종호 / 지난해에 교회 사역을 마무리하시면서 말씀하신 내용이 사람들 사이에 잔잔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다섯 가지 참회’와 ‘다섯 가지 감사’, 그리고 ‘두 가지 기대’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 은퇴사 가운데 참회 부분에 나오는 두 가지가 특히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조국의 민주화 운동이 한창일 때 민족 역사의 한복판에서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하고 방관자로 살아온 일, 그리고 지도하던 젊은이들을 깨어있는 역사의식을 가지고 역사의 마당에 서도록 인도하지 못한 것을 참회합니다.” “올곧게 살아가지 못하는 성도들, 특히 교회 내 부유한 기득권층들에게 그들이 상처 받을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회개를 촉구하는 예언적 설교를 제대로 못한 것을 참회합니다.” 저는 목사님의 이 솔직한 자기 고백에 신선해하면서 놀라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조금 아쉽기도 했습니다. 목회 사역 현직에 계실 때 이렇게 말씀하고, 사셨더라면 더 많은 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쳤을 텐데, 하는 마음 말입니다.

이동원 /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은사는 예언자적 설교가 아니라 제사장적 설교라고 생각해요. 설교 준비를 하면서도 힘든 사람들이 떠오르고, 강대상에 올라가면 상처 받은 사람들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힘든 사람 있으면 안아주고 싶고 상처 받은 분들은 싸매어주고 싶은 심정이지요. 이런 실존적인 나를 알기 때문에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 고민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런 설교를 나도 해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감 같은 것도 있고, 제 안에 부분적으로 숨어 있는 그런 의식이 있기 때문에 1년에 두 세 번은 민감한 메시지를 전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힘들게 전하면 꼭 문제가 되어요.(웃음) 제가 진보적인 입장은 아니지만 외부의 극우적 성향의 분들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가끔 교회 안에서 욕도 많이 먹습니다.(웃음) 분당이라는 지역은 보수적 성격이 강한 곳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국민일보>에 쓴 칼럼 때문에 항의를 많이 받았지요. 그런 이슈를 다룰 때마다 힘겨움이 있습니다. 제가 성격적으로 투사가 아니고, 목회를 하면서 한 번도 싸워본 적이 없습니다. 거의 양보를 하곤 하지요.

당시 이동원 목사는 ‘역사의 소금이 되자-노무현 전 대통령님을 떠나보내면서’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게재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생각보다 길고 오랜 울림을 이 땅 사람들의 마음에 남길 듯하다, 고 언급하면서 “심지어 정치 이념을 달리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까지 그는 깊은 슬픔의 그림자를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나갔다. 한국 정치사상 한 지도자에게 국민들이 ‘사랑합니다’라는 고백을 바친 경우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는 저세상의 사람이 되어 우리가 사는 세상으로 다시 돌아와 존재와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동원 목사는 2006년 4월 국가조찬기도회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던 인연으로 후에 노무현 대통령이 봉하마을로 돌아간 후 제대로 시간을 갖고 예수님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만 하다가 서거 소식을 접하게 됐다면서 “그는 이제 우리 앞에 ‘축복이 되는 사람’으로 돌아왔다. 적어도 우리는 그의 인생에서 그가 ‘학벌주의’ ‘지역주의’ 그리고 ‘권위주의’를 극복하고자 몸부림쳤던 진솔한 모습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가 우리 역사에서 정말 필요했던 소금 같은 존재였음을 비로소 기억해낸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이동원 목사는 칼럼 말미에 그리스도인이 과연 역사의 소금이 될 수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다음과 같이 호소한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셨고, ‘소금이 그 맛을 잃어버리면 무엇으로 짜게 하겠느냐’고 말씀하셨다. 노 전 대통령은 그 존재의 맛으로 그의 역할을 담당하고 저세상으로 떠나가셨고 이제 역사는 다시 우리의 역할을 묻고 있다. ‘너희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과연 역사의 소금이 될 수 있느냐’고…. 이 질문에 대한 진지한 대답에 한국 민족의 미래, 그리고 한국 교회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믿는다.”

한종호 / 그런 부분에 있어서 설교자로서 갖는 고뇌도 만만치 않으시겠어요.

이동원 / 큰 차원에서 제시할 수 있어도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는 복잡한 이슈들이 있습니다. 존 스토트는 <현대 사회 문제와 그리스도인의 책임>이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양떼를 데리고 그들이 먹을 수 있는 푸른 초장으로 가야 하지만, 이걸 먹어라, 저걸 먹어라”라고 말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구체적으로 이렇게 행동하라고 하기엔 말할 수 없는 설교자로서의 ‘고뇌’가 있습니다. 그동안 보수적 그리스도인의 사회참여는 사회봉사 차원을 넘지 못했습니다. 언제까지 여리고 길에서 강도 만난 사람을 주막으로 데려가 치료하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되겠지요. 여리고 길에서 계속 강도 사건이 일어난다면 그곳을 구조적으로 바꿀 작업이 필요하겠지요. 은퇴하기 전 5년 동안은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되지 않겠느냐 하는 차원에서 역점을 둔 것이 치매 노인을 위한 기관을 운영하고, 장애인을 고용해서 빵 공장을 하고, 노인 복지 기관과 생태관 등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봉사와 사회적 행동이 다르긴 합니다만 좀 더 설교하고 행동하지 못한 부분은 아쉽습니다. 은퇴 시점에 되돌아보니 제 주변에서 민감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 조언을 해 줄 학자나 전문가들이 있었다면 명확한 판단을 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도 있구요.

강해설교와의 만남

한종호 / 목사님의 설교 유형을 강해설교라고 하는데, 강해설교를 처음 어디에서 접하셨습니까? 강해설교의 어떤 멘토가 있으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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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역을 마무리하면서 참회를 선언했던 이동원 목사. ⓒ 한국 <뉴스앤조이>
이동원 / 제가 공부한 윌리엄틴데일대학에 허버트 카킹이라는 설교학 교수가 계셨는데 영국에서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로부터 설교 훈련을 받았던 분이었습니다. 그분에게서 강해설교(expository preaching)라는 말을 처음 들었습니다. 어느 날 카킹 교수가 설교학 시간에 설교를 한 편씩 써서 내라고 하더군요. ‘사랑’을 주제로 한 설교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는 “크리스천의 사랑이란 어떤 것인가”라는 제목에 이렇게 대지를 요약했습니다. 첫째, 희생적인 것 둘째, 자기 결단적인 것 셋째, 궁극적으로 하나님에게서 기원한 것. 그런데 교수가 점수를 줬는데 B도 아니고 C도 아니고 아예 F를 주더라고요. 최선을 다했는데 왜 낙제 점수를 주었는가 하는 생각으로 가서 따졌더니 “당신의 설교는 근본적으로 전제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더군요. 이것은 너의 생각이지 본문의 텍스트와 무슨 관계가 있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다시 설교를 쓰게 되었는데 텍스트를 근거로 해서 묵상하고 주석하는 훈련을 통해서 강해설교를 처음 접하게 되었고 제 설교의 큰 틀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지요. 그리고 1975년 여름에 달라스 신학교에서 강해설교의 대가인 해돈 로빈슨의 강해설교 세미나가 있었습니다. 그 세미나의 강연을 통해 강해설교가 주석적인 측면에서 성경도 잘 배우면서 소통의 은혜도 동시에 경험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한종호 / 설교는 성서와 청중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요. 강해설교는 이 양자 사이에서 어디에 더 비중을 두는지요?

이동원 / 처음에 저도 텍스트 설명에 많은 비중을 두었습니다. 지난 10년 사이에 많이 변했습니다. 지금은 성경과 청중의 비중이 50대 50입니다. 바울 서신이 그런 비율인 것 같아요. 골로새서의 핵심이 ‘그리스도의 주권’인데 1-2장은 원리적, 교리적으로 접근하고 3-4장은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거든요. 교회론을 다루는 에베소서도 1-3장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의 원리를 말하고 4-6장에서 그러므로 그 부르심에 교회 안에서 하나 된 삶을 합당하게 살아 갈 것인지를 그리스도 안에서 남편과 아내, 주인과 종의 관계로 어떻게 풀어나갑니다. 로마서도 보면 1-8장이 복음의 기초인 교리(칭의)를 다루고 9-16장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복음의 폭넓은 적용을 거의 반반을 다루고 있다고 봐요. 원리적 근거가 되는 성경 본문을 풀어나가는 것이 설교라고 한다면 본문에 대한 성실한 주석과 성경 자체가 콘텍스트 안에서 주어진 것이기에 설교를 듣는 청중들의 상황에 적용시켜 ‘이렇게 사십시오’라고 말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너무 원리적으로만 가지도 말고 그렇다고 상황적 적용만 하게 되면 설교자 자신만의 얘기로 빠져들어 본문을 상실하게 될 우려가 있기에 균형을 맞추는 작업이 중요합니다. 이 시대의 설교자는 말씀(text)뿐 아니라 청중들이 살아가는 시대적인 정황(context)도 함께 이해해야 합니다. 설교에서 텍스트의 중요성은 말할 나위 없지만 그 텍스트 역시 역사적, 사회적 콘텍스트 안에서 존재하기에 청중들의 삶의 정황을 이해하지 않으면 설교가 공허해지기 쉬우니까요.

설교자의 문학적 소양

한종호 / 글로 읽는 설교로도 목사님의 설교가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목사님의 개인적은 체험과 관련해서 설교자와 문학적인 소양들이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고 보십니까?

이동원 / 중고등학교 시절에 문학에 대단히 심취했었습니다. 당시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하고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홀로 사색에 잠기면서 점점 더 책 속으로 빠져 들어갔지요. 그때 참 많은 고전들을 읽었습니다. 그 당시 엄청 두꺼웠던 도스토예프스끼 전집과 실존주의 작가인 카뮈, 샤르트르 등 비단 고전류뿐만 아니라 이것저것 읽을 수 있는 것이라면 가리지 않고 다 읽었던 것 같습니다. 독후감 대회는 거의 매회 입선하기도 했고, 사춘기 시절을 회고할 때 가장 의미 깊은 추억의 조각은 고교 3년을 졸업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학원지에 “영원에의 회귀”라는 글을 쓴 것입니다. 그 글은 지금 읽어도 부끄럽지 않은, 제법 사색의 무게가 실려 있는 종교적인 수필이었습니다. 예수를 믿고 난 후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 시대의 문학적 언어로 전하고자 의도적으로 노력했지요. 베스트셀러는 그 시대 사람들의 사고를 가장 잘 나타내고, 시대의 흐름과 감각이 있습니다. 물론 베스트셀러가 다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 시대의 청중을 이해하는 데 매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설교 세미나에서 종종 목사님들이 설교자의 은사와 능력에 대해 묻곤 합니다. 소프라노 김영미 씨와 대화를 하다가 우연히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선천적으로 음악가로 타고난 게 어느 정도고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 비중이 얼마나 됩니까?” 그는 타고난 것이 51퍼센트라면 노력은 49퍼센트라고 말하더군요. 음악하는 분들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합니까. 설교자도 그 못지않은 꾸준한 노력도 필요하고 설교자로서의 부르심과 ‘은사’도 노력 못지않게 확실히 있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설교도 하나의 작품이기에 기본적으로 문학적 소양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설교자로서 신학과 관련된 책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책에 관심을 가져야 교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사람들의 관심 분야가 어디에 있는지도 살필 수 있습니다.

한종호 / 목사님은 일반 목사님들에 비해서 독서의 양이 많으십니다. 설교에서 그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설교 준비를 위해서 책을 읽으시는지, 아니면 그것과 상관없이 책을 읽으시는지요?

이동원 / 반반입니다.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보기도 하지만 거의 매주 한 번씩 서점에 가는 편입니다. 설교준비하다 머리도 식힐 겸 기분전환도 할 겸 책을 둘러보다가 습관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책들이 있습니다. 그런 책들은 대부분 설교와 전혀 관련이 없는 책들입니다. 여행 중에 비행기나 기차 안에서 틈틈이 보기도 하는데 독서 스타일이 정독형은 아니지만 중요한 부분은 정독하고 메모하면서 주제별로 정리하지요. 거의 40년 된 독서 습관입니다.

양보할 수 없는 설교의 목표

한종호 / 요즘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설교도 인문학적인 바탕에서 진행되어야 하지 않을는지요.

이동원 / 물론 설교자에게 인문학적 토대와 소양, 훈련이 분명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포스트모던의 영향을 받은 분들이 설교의 결론을 내리지 말고 ‘신비’의 차원으로 남겨 두는 일부 경향이 있는데 저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설교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 부분을 정 목사님이 비판을 하셨는데, 강박적이라는 것이지요. 그분이 봤을 때 그럴 수 있습니다.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설교를 보면 “회개하라, 복음을 믿어라, 죄사함을 받아라,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다”라는 메시지가 분명한데 이 부분을 약화시키지 않나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메시지가 없으면 그건 한편의 에세이지 설교는 아니라고 봅니다. 저는 설교의 목적을 세 가지로 생각합니다. 첫째, 예수 안 믿는 사람에게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소개하여 구원 받게 하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양보할 수 없는 설교의 목표입니다. 물론 구원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성령의 역사이지만 복음을 전하는 건 여전히 설교자의 책임이지요. 둘째로 그렇게 구원 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리스도의 충만한 분량에 이르도록 성장하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부분은 설교 사역 후반기에 자리 잡은 것인데,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나라를 위하여 역사 속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한종호 / 설교의 목적을 세 가지로 정리해 주셨는데, 우문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설교를 통해서 사람이 실제로 변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이동원 / 우문이 아니라 중요한 질문입니다. 설교자로서 저 자신도 고민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기대한 만큼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평생 가지고 있는 실존적 딜레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교자로서 보람은 제 주변에 있던 예수 안 믿고 교회에 다니지 않았던 분들이 설교를 듣고 신앙인이 되어 헌신하는 모습을 보면 참 감사합니다. 간혹 비판을 받긴 하지만 특별집회 때는 설교가 끝나면 초청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것 때문에 예수 믿고, 목회자와 선교사로 헌신하게 되었노라고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물론 그 안에 얼마나 실존적으로 변화되고 성화되었는지 하는 문제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긴 하지만 설교자가 변화에 대한 기대없이 설교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한종호 / 목사님은 어떤 설교에서 동성애에 대해 강한 어조로 비판하셨습니다. 그 결과가 에이즈라고까지 말씀하셨는데,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이동원 / 그 얘기는 17년 전에 로마서 강해설교를 하면서 딱 한 번 했습니다. 그 이후에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유머를 좋아해요. AIDS를 우리말로 하면 “아이쿠 이제 다 살았다”했던 조크였어요. 그리고 그때 한 뒤로 지금 저의 시각이 많이 달라졌기도 합니다. 저는 성적소수자에 대한 인격적 존중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증거는 그 이후에 한 번도 그런 얘길 안했다는 거예요.(웃음) 그런 면에서 그 당시 깊이 생각하지 않고 말한 부분도 있지요. 그러나 동성연애가 정상적인 성적인 결정으로 받아들이긴 어렵구요. 성경을 아무리 융통성 있게 해석해도 아직까지는 거기까진 갈 수 없는 것 같아요.

한종호 / 목사님의 설교는 거의 예화로 시작되고, 예화도 대개는 미국에서 일어난 것들입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수년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이런 것이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미국 편향성에 부채질을 하는 건 아닌지요.

이동원 / 그 부분도 맞지 않아요. 제가 스탭들하고 조사를 해 봤어요. 정용섭 목사님께서 로마서 강해설교집을 읽으신 것 같은데 그 두 권에는 36편의 설교가 있습니다. 미국 예화가 4개 나와요. 영국 얘기는 많이 했어요. C. S. 루이스, 죠지 뮬러 등 제가 좋아하는 분들을 상당히 많이 인용했습니다. 책 이야기를 많이 인용한 건 사실이에요. 영어 이름이 많이 나오니까 그걸 다 미국이라고 일반화해서 지적한 것 같습니다. 저의 다른 설교집도 찾아봤는데 20편의 설교 중에 미국을 직접적으로 인용한 건 다섯 개 정도에요. 제가 오랫동안 미국에서 살았으니 미국 얘기는 나올 수밖에 없고 로마서 강해설교와 <지금은 다르게 살 때입니다>에 묶인 설교는 미국에서 갓 들어와서 한 설교입니다.

‘God’s Story’, ‘My Story'

한종호 / 더 본질적으로, 예화 없는 설교는 불가능할까요? 로이드 존스는 예화를 사용하지 않은 거로 알고 있습니다. 목사님의 경우에 예화는 설교와 어떤 관련성이 있을까요?

이동원 / 아닙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도 예화를 사용하지요. 존 번연 얘기도 하고 영국 목사님들의 지나간 얘기도 많이 나옵니다. 저는 한 편의 설교에 두 세 번의 예화를 듭니다. 그것은 지구촌교회에서 목회하는 13-4년 어간에 형성된 제 설교의 틀거리라 할 수 있습니다. 지구촌교회가 지향하는 것은 ‘셀교회’입니다. 성도들이 주일에 들은 설교를 갖고 셀모임에서 어떻게 삶에 적용할 것인가를 나눕니다. 여기에 딱 맞는 설교가 삼대지 설교(첫째, 둘째, 셋째)입니다.(간혹 비판을 받긴 하지만) 꼭 삼대지가 아닐 경우도 있지요. 때로는 하나나 둘, 네 개의 포인트를 할 때도 있어요. 원포인트 설교가 문제가 되는 것은 설교 끝나고 나서 기억에 남는 게 뭐냐고 물어 보면 교인들이 정리를 잘 못해요. 그런데 삼대지 설교를 하면 교인들이 잘 따라오고 명료하게 기억해요. 그것을 셀모임 자리에서 소화시키는 것은 효과도 있구요. 그런 실용적 측면에서 설교를 정형화시켜왔습니다. 물론 하나의 대지로 압축해서 설교할 때 생각의 전환과 변화를 줄 수 있는데 그 대목에서는 예화가 두세 개 반드시 나올 수 있지요. 예수님도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시지 않으셨어요. 최근 설교학에서도 “이야기식 설교”(narrative preaching)를 강조합니다. 포스트모던 시대에서는 이야기가 빠지면 호소력이 없거든요. 이 시대에 눈여겨봐야 할 문화적 코드중의 하나가 텔레비전프로의 ‘토크쇼’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야기에 관심이 있습니다. 거기엔 잡담도 있지만 사람들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거든요. 하나님의 이야기가 성경이고, 개인적인 삶이 ‘나의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 있어도 사람들이 듣지 않으면 소용없지 않습니까. 하워드 헨드릭스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왜 이 좋은 엄청난 진리를 말하면서 사람들을 잠들게 하는가?” 소통을 위해서는 좋은 이야기를 개발하고 이야기를 통해서 소통해야 된다고 봐요. ‘God’s Story’를 어떻게 ‘My Story’ 속에 적용할 수 있게 도와주느냐 하는 것이 설교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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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클리닉에서 이동원 목사가 강평하고 있는 모습. 이동원 목사는 젊은 설교자들을 위해 매년 설교 클리닉을 갖고 있다. ⓒ 미주뉴스앤조이
한종호 / 한국 교회 신자들이 성서 말씀의 깊이보다는 귀에 솔깃한 예화에서 더 은혜를 받고 있는 실정에서 뭔가 방향전환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동원 / 저도 그 부분에서 동의합니다. 제가 하고 있는 ‘설교 클리닉’에서도 성경 본문이 희생되고 본문에서 분명하게 전달해야 할 내용들이 망각될 정도로 스토리가 중심이 되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저도 설교준비를 마치고 원고를 앞에 놓고, 본문 보다 스토리가 중심이 되진 않았는지 주의 깊게 살펴봅니다.

한종호 / 다시 강해설교 문제로 돌아가서 질문을 드립니다. 강해설교자들은 대개 성서를 문자의 차원에서 받아들이면서 성서윤리를 규범으로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성서에서 한두 가지 교훈을 끌어내서 그것을 신자들에게 재미있게 전하는 형국입니다. 일종의 성서도구주의로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는데요. 그럴 경우 생명과 구원의 신비가 닫혀버리는 느낌이 듭니다. 강해설교가 무엇인지 목사님 나름대로 정의를 해주시면서 풀어주시겠습니까?

이동원 / 성경의 세계는 이천년 전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주셨던 메시지입니다. 저는 그 안에 ‘규범적 진리’(normative truth)가 있다고 생각해요. 오래 전에 주신 거지만 어느 시대나 적용될 수 있는 진리이지요. 강해설교의 핵심은 그런 진리를 찾아서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적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생명과 구원의 신비’가 닫힌다는 지적이 무엇인지 이해는 합니다. 그런데 구원이라는 개념을 협의로 보지 않고 광의로 봤을 때, 칭의라는 차원, 성화의 과정, 마지막 완성 단계인 영화(glorification)의 차원도 있습니다. 이 전체 과정은 사실 엄청난 신비입니다. 저는 이렇게 이야기 하고 싶어요. 예수님을 처음 믿는 사람 중에 신앙생활 제대로 하려고 걸음마부터 배우려고 하는 사람에겐 구원의 확신이 필요하다고 봐요. 아직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기 전인데 엄청난 신비의 문제, 고통의 문제, 인간의 문제와 씨름하게 하는 건 버거운 일이지요. 이 부분은 당연히 해야 하고 포기할 수 없지요. 쉽게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되요. 그래서 구원의 넓은 의미에서 ‘신비’는 분명 있지만 존 스토트가 말한 ‘기독교의 기본진리’의 측면에서 구원의 메시지는 단순하고 명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조차 못 알아듣는 분들이 있어요. 이런 분들에게 인간이 씨름하고 있는 삶의 문제를 보이면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물론 그런 신비의 차원, 그건 포기할 수 없는 설교 주제입니다. 최근에 이런 주제와 관련된 설교 중에 김영봉 목사님(와싱톤 한인교회)의 ‘내 영혼의 오두막’ 설교 시리즈가 참 인상 깊었습니다. 악의 문제, 고통의 문제, 상처 입은 것 등을 깊이 있게 다룬 훌륭한 설교의 전형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종호 / 한국 교회 강단에서도 이제는 강해설교에 대한 인식은 보편화됐습니다. 앞으로 강해설교와 연관하여 어떤 전망을 하십니까?

이동원 / 처음 강해설교 할 때는 본문을 설명하는 그런 수준이었지요. 지금은 많이 변했습니다. 예전엔 본문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주제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것을 “귀납법적 강해설교” 혹은 “주제별 강해설교”라고 표현합니다. 사람들이 한 주제를 붙잡고 확실히 씨름하고 싶어 하는 욕구들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본문을 떠나지 않으면서 본문이 제시하는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내면서 어떻게 강해할 것인가로 바뀌는 것이 필요합니다. 얼마 전 도널드 수누키안(강해설교의 대가인 해돈 로빈슨의 제자)이라는 설교학자를 만나서 “topical expository preaching”이라는 용어가 나왔다고 하니까 자기도 달라스학파의 강해설교를 많이 했는데 이제 주제별 강해설교를 해야겠다고 하면서 한참 웃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앞서 말씀드렸듯이 처음부터 너무 해답을 제시하려고 하지 말고 주제를 탐구하고 고민하고 씨름하면서 질문을 던지고 마지막에 답을 함께 찾아가 제시했으면 합니다. 저도 그런 면에서 많은 궤도수정을 해온 셈이지요. 그리고 제가 볼 때 어쩔 수 없이 “이야기식 설교”가 많이 연구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저도 설교를 완전히 이야기로 풀기에는 위험성이 있고 그러다보면 본문을 떠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도 있고 그래요. 그러나 시대의 경향으로 봐서는 본문을 떠나지 않으면서도 성경의 이야기를 우리의 이야기로 풀어 나가는 작업이 앞으로의 설교자의 과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목삽니다"

한종호 / 대중적인 스타 설교자가 많은 개신교는 전체적으로 퇴보되는데 반해서 그런 인기가 높은 강론자가 없는 가톨릭교회는 크게 부흥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이동원 / 이 말이 경솔한 표현일 수도 있는데 개신교는 ‘브랜드 이미지’가 없습니다. 가톨릭은 고상하고 신비로운 면이 있습니다. 비교적 도덕적 실수도 알려지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개독교’라는 단어가 상징하듯이 목사나 교회의 이미지가 천박하게 보이잖아요. 끊임없이 스캔들, 폭력, 세습, 돈 문제 등이 발생하니까 교회가 엄청난 부담을 안고 가는 거지요. 그러니 전도가 되겠어요? 너무 가슴 아픈 건 저 자신도 목사인 것이 부끄럽습니다. 최근에 어떤 모임에서 안 믿는 분들에게 “아유 죄송합니다. 제가 목삽니다” 하고 인사했더니 웃더라고요. 교회가 새로워져야 하는데 답이 없다는 게 고민이지요. 그렇지만 희망은 버리지 않아요. 곳곳에 깨어있는 좋은 목사님들이 계시고, 교회가 드러내지 않고 세상을 섬기는 일에 열정과 소명을 갖고 있는 것을 봅니다. 교회사를 보면 교회가 바닥까지 내려갔을 때 새롭게 하시는 영적 각성을 주셨듯이, 하나님께서 하시지 않겠나 싶어요.

한종호 / 목사님께서 지적하셨듯이 우리에게는 분쟁과 시기, 경쟁과 기득권, 자기 과시와 아부 그리고 무엇보다도 최근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도덕적 타락과 권력 다툼, 이기심만을 키워온 부끄러운 모습이 가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듭니다. 우리의 정력은 온통 교회 안에서 힘 겨루는 일과 교회 자신을 살찌우는 일, 교회를 내세우는 일에 쏟아졌을 뿐입니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문제의 뿌리는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이동원 / 목회자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확고한 자각, 내가 왜 이 일을 걷고 있는가 하는 자기 돌아봄이 필요합니다. 저희가 공부할 때만 해도 목회자의 길은 어렵고 힘든 일이었습니다. 인기도 없었지요. 당시 이화여대에서 직업에 대한 여론조사를 했는데 목사는 이발사 다음이었어요.(웃음) 처갓집에서 저희 집사람이 목사하고 결혼한다고 하니까 목사한테 시집가면 밥도 못 먹고 산다고 걱정할 정도였어요. 당시만 해도 그랬어요. 목사가 되는 것은 고생하는 길이고 십자가를 지는 삶이었어요. 그렇지만 복음을 전하는 보람, 예수님을 따라 사는 기쁨 때문에 다른 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요. ‘십자가’와 ‘제자도’가 핵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것이 완전히 변했어요. 교회 성장주의, 성공주의와 긍정적 사고가 주류를 형성했어요. 아무런 준비 없이 빨리 성공했고, 성공을 관리할 수 있는 도덕적 능력 없이 부(富)가 주어졌고, 영적 성찰 없이 권력을 갖게 되니 보이는 게 없지요. 독불장군이지요. 사상누각인데 말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한순간 자기도 모르게 무너져버리잖아요.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목회자로서 저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던 것은 허물없이 털어놓고 이야기하고 격려해준 주변의 좋은 동역자와 선배 목사님들 때문이었어요. 또 하나는 초창기 선교사로부터 배운 개인적인 경건의 시간(Quiet Time)입니다. 특별한 거 아니에요. 매일 아침 성경 묵상하고 기도하고 오늘 하루 어떻게 살 것인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동안 쭉 살펴왔지요. 요즘도 묵상한 내용을 트위터에 140자로 요약해서 올립니다. 하루 한 번이라도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없었더라면 저도 얼마든지 타락할 수 있고 넘어질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설교만 잘하면 교회가 건강해질 수 있을까요?

한종호 / 목사님의 목회사역을 통해 교회가 놀라울 만큼 규모와 영향력에 있어서 성장했는데, 어느 정도로 설교가 목사님의 목회사역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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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가 새로워져야 하는데 답이 없다는 게 고민"이라는 이동원 목사는 "목사인 것이 부끄럽다"고 말했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 한국 <뉴스앤조이>
이동원 / 주변에서는 지구촌교회가 설교 하나로 컸다고 하는데(웃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설교만 잘하면 교회가 건강해질 수 있을까?” 아닙니다. 설교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게 제가 목회를 마무리하면서 내린 결론입니다. 건강한 교회를 위한 목회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설교자의 인격과 리더십이지요. 그리고 설교를 통해 교인들이 그리스도를 더 알아가고, 더 헌신하고, 더 따르는 제자로 살도록 도전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지구촌교회의 장점은 ‘균형 잡힌 교육’입니다. 교인 한 사람이 새로 등록하면 4~5년의 교육과정을 이수해야 합니다. 실제 교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교회 출석 동기가 설교와 함께 교육시스템을 꼽았습니다. 교육 시스템은 3단계로 하고 있습니다. 교인이 되기 위한 필수 과정이 있고 그 다음엔 셀공동체에서 생활하기 위한 과정이 있습니다. 세 번째는 리더십 과정입니다. 평신도들이 사회 속에 들어가서 어떻게 리더가 되느냐가 마지막 과정입니다. 제가 속한 교단이 침례교인데 미국 침례교회의 최대 장점이 주일학교(Sunday School)에요. 여기서 말하는 주일학교란 어린아이들이 다니는 곳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어른까지 다 포함합니다. 미국 교회 교인들은 어쩌다 주일예배는 빠질 수 있어도 주일학교는 빠지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 정도로 주일학교를 중요시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설교도 중요하지만 체계적인 교육, 이 두 가지를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모태신자가 아니고 20대에 처음 교회에 나갔는데 목사님이 뭘 믿으라고 하는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런 경험도 있고 해서, 교회에 처음 온 사람이 신앙의 ABC부터 시작해서 깊은 단계까지 들어갈 수 있도록 커리큘럼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본당은 작아도 서로 공부할 수 있는 교실이 많아서 신앙 수준에 따라 공부하고 어떻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다운 삶인지를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그것을 ‘주일학교식 제자훈련’이라고 합니다. 미국에서 목회할 때도 그랬고 한국에 와서도 그렇게 했습니다. 아마 대형 교회 중에 저희 교회가 본당이 제일 작을 겁니다. 목회 마지막까지 유혹 중의 하나가 교회를 크게 짓는 거였습니다. 교인들의 요구도 굉장히 컸지만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은 신앙교육을 잘해서 최소한 교인들이 무엇을 믿고 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치는 거였습니다. 그런 생각을 갖고 그동안 목회를 해 왔습니다.

한종호 / 성서의 역사비평을 목사님은 어떻게 받아들이시는지요?

이동원 / 저는 실제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석사과정을 공부한 미국 사우스이스턴침례교 신학교가 굉장히 보수적인 학교입니다. 그런데 전 이 학교에서 상당한 문화적, 지적 충격을 받았습니다. 성서학 교수들이 문서비평과 역사비평을 가르치고 조직신학 교수가 과정신학 입장에서 신학을 전개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신학교를 잘못 택했나 걱정하기도 했지만, 한 학기가 지나자 복음적인 신앙만 포기하지 않는다면 급변하는 시대의 신학을 배우는 데 더 없이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후에는 너무 많은 학문적 도움을 받았습니다. 성경이 그 당시의 역사와 문화 속에서 나온 책이고 그런 문화와 상황 속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오늘이라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 풀어가고 적용하고 이해하는지 도움을 받았습니다. 보수적인 목회자들도 문서비평이나 역사비평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을 가졌으면 합니다.

한종호 / 후학들이 목사님을 어떤 설교자로 기억해주기를 원하시나요?

이동원 / 그냥, ‘성경적 설교’와 ‘소통하는 설교’를 위해 몸부림 치고 간 사람 정도….(웃음)

한종호 / 앞으로 젊은 설교자들의 설교 훈련을 위해서 어떤 계획 같은 것이 없으신지요?

이동원 / 이미 시작했습니다. 가평에 있는 필그림하우스에서 1년에 두 번 ‘설교 클리닉’을 열고 있습니다. 25명씩 참석하는데 저의 설교철학을 강의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설교 작성하고 설교하고 비교하면서 진행하는데, 너무 재밌고 오신 분들도 참 좋아해요. 어떤 설교도 완벽한 설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거기에서 많이 배워요. 그곳엔 다양한 신학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에 그 안에서 저를 돌아보고, 신학의 지평이 넓어진다는 느낌이 들어요. 건강이 허락될 때까지 가장 중요한 사역으로 하고 싶습니다.

이동원 목사님과 인터뷰 준비에 앞서 읽었던 책, “이동원 목사의 조기 은퇴와 성역 40주년을 기념하며”라는 부제가 붙은 <내가 본 이동원 목사>에는 그이의 선후배, 동역자, 평신도 30명의 덕담이 실려 있다. 그 책을 통해서 그리고 인터뷰 내내, 인터뷰를 마치고 남아 있는 잔영은 스스럼없는 ‘친밀감’이었다. 이러한 친밀감은 “나 같은 인생이 감사할 수밖에 없는 10가지 사실”이라는 글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1. 나 같은 죄인이 예수 믿고 구원 받아 하나님의 아들 된 영겁을 두고도 갚을 수 없는 은총의 사실, 2. 나 같은 남자가 아내 명자를 만나 결혼하여 남편 되고 아빠 된 아무리 생각해도 믿을 수 없는 사실, 3. 나 같은 웅변대회 단골 낙제생이 부름 받아 설교자가 된 기막힌 사실, 4. 나 같은 내 한 몸 추스르기 어려운 인생이 교회 공동체를 섬기는 목사 된 감격적인 사실, 5. 나 같은 사랑에 굶주려 살아온 걸식이 뭇 성도의 사랑을 먹고 사는 황송한 사실, 6. 나 같은 10대에 꿈을 잃었던 소년이 50대에 10대보다 더 가슴 설레는 꿈을 꾸고 사는 꿈만 같은 사실, 7. 나 같은 수원 촌놈이 세상이 좁다 하고 싸돌아다니며 온 지구촌에 복음을 전하게 된 만화 같은 사실, 8. 나 같은 별난 부끄럼으로 친구 하나 사귀지 못하고 자란 인생이 온 세상에 그득한 친구들을 갖게 된 기적 같은 사실, 9. 나 같은 죄 짓기 십상인 타락한 인생이 유명세 덕분에 몸을 도사리며 근신하도록 특별히 배려된 사실, 10. 나 같은 편지 쓰기조차 싫어하는 게으른 인생이 인터넷 덕분에 지구촌 성도 곁으로 다가설 수 있는 편리한 사실."

인터뷰 말미에 후학들이 목사님을 어떤 설교자로 기억해주기를 원하느냐는 물음에 “그냥, ‘성경적 설교’와 ‘소통하는 설교’를 위해 몸부림 치고 간 사람”정도라는 말을 듣고 한참 웃었는데, 마감에 쫓겨 밤을 꼬박 지새고 마무리하는 시간, 그 말을 생각하니 다시 웃음이 절로 난다. 이런 분에게 더 무슨 수식을 붙이겠는가.

인터뷰어 · 한종호 / <기독교사상> 편집주간

* <기독교사상> 3월호에 실린 글을 허락을 받아 게재합니다.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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