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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양식/ 강승호목사(순복음중앙교회)

“자주 독립을 위해 교육, 정치, 기업의 3요소를 실천한 사람”

조국의 현대 사회 발전기에 혜성처럼 나타 났다가 사라진 격동기 인물 중에 한 사람으로 일제 강점기 때 신문화의 대한 민력 배양을

바탕으로 한 민족 독립이 ‘나의 최대 소원이며 목표’라는 신념으로 초지일관 의지를 굽히지 않고 실천해 온 선각자의 한 사람인 

인촌 “김성수”(1891-1955)를 소개 하면서 조국에도 진정한 애국자를 갈망해 본다..


그는 전북 고창군 부안면 인촌리서 출생하여 세 살 때 백부 김기주의 양자로 출계 하였다.양부는 군수를 지냈고 생부 김경중은

진안 군수를 역임한 집안으로, 김성수는 여러 곳을 전전하면서 신학문에 눈을 떳다.

18세가 되어 1908년 가을 ‘송진우’(1889-1945)와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 와세다 대학에 입학한 1910년, 국권을 빼앗기는 한을 맞았다. 

그는 동대학 정경학부를 졸업하고 1914년 조국으로 귀국 하면서 신문화의 의한 민력 배양을 바탕으로 한 민족독립이 그의 야망이고

포부였다.

일제 통독 정치하에서 그는 교육을 통한 인재 양성, 산업 진흥에 의한 민족 자본의 육성, 언론 활동을 통한 민족 의식을 고취 하면서

민력 배양을 위해 젊음을 불태웠다. 그는 자기의 포부를 펴는 제1보로 1915년 4월 중앙 학교를 25세 나이에 인수하여 당시의 사회의

큰 화젯 거리가 되였다.

그는 1917년 광목을 짜는 경성직유회사를 인수, 경영 하다가 1919년 경성방직회사를 창립, 현대적 시설을 갖춘 방직회사로 일본 

재벌에 의해 같은 해 11월 부산에 조선방직회사가 있었으나 조선인이 설립한 것은 이 회사가 처음 이었다.


이렇게 방직회사를 설립 하였지만 그의 본 뜻은 교육에 있었다. 그는 중앙 학교를 인수할 때부터 한양 이라는 교명까지 지어 놓고 

전문 학교를 세울 것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3, 1 민주화 혁명 운동으로 포기, 차선으로 ‘동아일보’를 창립, 1920년 4월 1일에 

발간한 동아일보는 민족지를 대변 하였고 민족주의를 육성 하면서 일제에 항거 하였다.

1932년 3월, 1905년 이용익이 창설한 이래 경영난을 겪던 보성 전문 학교를 ‘손병희’(1862-1922)가 맡았으나 여의치 않아 김성수가

맡아 전문 학교로 발돋음 하면서 오늘의 명문 고려대학교로 발전 하였다.

그는 경성 방직서 생산되는 최초 제품에 “태극성”이라는 상표를 붙였고 보성 전문의 본관을 지을 때 그 후문에 태극의 모양을 

새겨 넣는 등 그의 애국심 단면을 보여 주었다. 그는 끝끝네 창씨 개명을 거부 하였고 일제가 주는 작위직도 거절 하였다.

조국이 8, 15 광복을 맞을 때 정치에는 뜻이 없었고 ‘보성 전문을 육성해서 동서 문화의 교류를 기할 수 있는 동양 제1의 대학을 

만드는 것이다‘라는 일념이 였으나 송진우가 암살되자 이를 계기로 정계에 나서게 되었고, 한국민주당 당수가 되었다.

광복에서부터 대한민국 수립 때까지 그의 정치는 임시정부 법통아래 이승만(1875-1965), 김구(1876-1949), 김규식(1881-1950)의

3자 합작에 의한 독립 정부를 실현 시키는데 있었고 한민당과 한독당이 합당 함으로써 민족 진영이 대동단결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정치적 신념 이었다.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 후 한국 민주당은 야당이 되었다. 그가 국무총리 임명이 기정 사실 이었으나 그는 재무장관 관직을 받았다.

강력한 이승만의 협력자 였던 그는 소외 시켰다. 이승만의 1인 독재나 남북통일 중간 위치에서 한민당 신익희(1894-1956), 

지청천(1888-1959) 대한국민당과 합당, 민주 국민당을 탄생케 하는데 성공 하였다.

그러나 이승만과 거리가 생긴 것은 1951, 봄, ‘방위군 사건, 거창사건을 처리하는 사건에서 독재성이 첨예하게 드러 났고, 

다음 해 5월 이정권 부산 정치파동을 일으켜 독재 체제를 영구히 굳히려는데 정면 도전 하였다.

이시영(1869-1953)부통령이 사직하고 1951, 5, 15, 2대 부통령이 선출되어 그동안 병상에 있던 그는 5, 29,격렬한 문구로 사퇴서를

국회에 제출, 이승만 정권 타도에 나섰다. 그러나 이승만의 자유당은 1954년 총선에 대승하고 11월 그 해 초대 대통령 중임제한

철폐개헌안을 사사 오입으로 통과 시켰다. 자유당 독재를 타도하려 했으나 1955년 2월18일 65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승만의 영욕의 삶은 훗날 하겠다. “의는 나라로 영화롭게 한다”(잠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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