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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는 용서와 만나야 진정한 용서가 된다.

종이에 부득불 앞뒤가 있는 것처럼,

용서에도 양면이 있다.

 용서하는 용서가 있고, 용서받는 용서가 있다.

용서해 주어도 용서받지 않으면, 용서가 것이 아니요,

용서를 빌어도 용서해주지 않으면, 용서는 없다.

용서는 빌어야 하고, 용서는 해주어야 한다.

용서함은, 충분히 앙갚음 하고, 댓가를 요구해도 마땅한, 결정적인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 대해, 아무런 조건 없이 용서하는 것이다.

 

법적 대응을 해도 하자가 없고, 당연한 권리를 요구할 있어도, 요구치 않고 참으며,

실수이든 고의적이든 악의로 했던, 내게 손해를 끼치고, 중상모략 거짓증거로 인격과

명예에 심중한 타격과 손상을 입혀도 대항치 않고, 일을 범한자가 하나님의 징벌을 받을까

오히려 염려해 주며, 마주쳤을 , 행여나 그가 부끄러워 할까 조심하며,

우연히 그가 재난 당했을 , 주위 사람들이 행실의 댓가로 여길까 조바심하며,

그가 짓을 뉘우쳐 부끄러워 , 측은히 여기며, 하나님 앞에서 진심으로

긍휼히 여기며, 축복하며 위해 기도하며 용서하는 것이다. 용서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함 같이 하는 용서다(4:32). 스데반은  용서를 했다.

 

손양원목사님은 공산주의사상에 물든 안재선이라는 학생이, 아들 손동신

손동인을 총살 했을 , 아홉가지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며, 가족과 주위의

극구 반대에도 구하고, 원수의 사면을 탄원,  용서할 뿐만 아니라,

자기의 양아들로 삼았다.

안용준목사님은 그것을 사랑의 원자탄이란 책으로 썼다 

앞서 스데반,  손목사님이 분명 보여주었건만, 성경이 사람으로는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있으며(10:27 ), 내게 능력주시는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있고(4:13),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9:23),

 너희 믿음대로 되리라(8:13) 했건만, 그렇게 용서를 가르치는 사람도 많지 않고, 

  가르치는 자신들이나 가르침을 받는 자들이, 그렇게 살려고 믿음의 선한 싸움도

싸우니, 신자도 많고, 대형교회들이 위용을 자랑하고, 교회성장학,

온갖 영성수련회, 수양회, 부흥사경회, 세미나 심포지움, 각종 포럼, 디지털문화,

각종 언론 방송을 통해 홍수처럼 말씀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용서는 하나의 신화로 들리고,

진정한 용서의 간증을 듣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어,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라면, 십자가의 사랑과

용서를 따라 살아가려고, 간구하고, 원수갚음의 죄와 더불어 피흘리기까지 싸우며,

불용서를 회개해야 것이다.  

용서받음은, 내가 잘못한 상대방에 대해, 나의 실행 허물 범죄를 솔직히 인정하고,

진정으로 뉘우쳐 회개하고, 죄를 원통히여기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은혜로

구원받아 십자가의 보혈공로로 원죄와 자범죄를 씻음받고, 중생함을 받은

성도의 성경적인 양심회복을 위해, 통회자복 겸손히 하나님께로 돌아갈 ,

성경의 약속대로 (1:18, 요일1:9), 주시는 선물이다.

 

시편51편으로 회개한 다윗을 보면, 기도하는 자에게 주시는 성령님의 감동 감화

인도하심으로, 회개하고 용서받음이 전혀 불가능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정죄함이 없는 하나님의 은혜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문제는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아닌 것처럼 시치미를 떼고, 그것이 폭로될까 안절부절 온갖 인간적인 수단을

강구하고, 탄로가 나게되면, 그것을 감추거나, 정치적으로 해결하거나,

미사려구로 변명하거나, 잘못하지 않은 것처럼 거짓으로 강변은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말씀의 거울 앞에 비쳐진 자신의 추한 모습을 외면하고 회개치

 않는데 있다용서받지 못함은 비극이다.

예수님은 회개할 용서하라 (17:3-4),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5:23-24) 하셨다.

교회의 위기는 무슬림세력의 확장이나, 반기독교정서나, 세계 도처 박해

못지않게, 기독신자들 사이에 진실히 용서함과 진정한 용서받음이 일어나고

있지 않다는데 있다.

 21세기 기독교는, 스데반처럼 용서하고, 다윗처럼 용서 받음이, 불가능한 기독교인가?

(2011/9/1 우초  김만우목사/필라제일장로교회 원로목사,인터넷복음방송 상임고문,필라원로목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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